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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야기

폭풍 치는 밤 열차와 함께 강으로 사라진 다리: 1879년 스코틀랜드 테이 다리 붕괴 사고의 원인과 바람 하중

1879년 12월 28일 밤, 스코틀랜드 테이강을 건너던 열차가 다리 중앙 구간과 함께 강물로 떨어져 탄 사람이 모두 숨졌어요. 바람을 따로 계산하지 않은 설계, 결함을 메워 쓴 주철 기둥, 지켜지지 않은 속도 제한, 그리고 영국 다리 설계 기준을 바꾼 조사 결과를 기록으로 정리했어요.

1880년 촬영된, 가운데 구간이 무너져 사라진 스코틀랜드 테이 다리
가운데 구간이 무너진 테이 다리. 1880년 밸런타인스 사진관이 찍은 사진이에요.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1879년 12월 28일 일요일 밤, 스코틀랜드 동부에는 그 지역에 20~30년 산 사람들도 처음 본다고 할 만큼 거센 폭풍이 불고 있었어요. 저녁 7시 13분, 열차 한 대가 테이강을 가로지르는 긴 철교로 들어섰어요. 몇 분 뒤 다리 남쪽 끝 신호소에서 열차를 지켜보던 사람은 번쩍하는 빛을 보았고, 다음 순간 열차의 불빛이 모두 사라졌어요. 열차는 다리의 가운데 구간과 함께 강물 속으로 떨어졌고, 타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어요.

기사 작위까지 받은 긴 철교

테이강에 다리를 놓자는 계획은 1854년부터 있었어요. 기술자 토머스 바우치가 설계한 다리는 1871년 착공해 1878년 6월 1일 승객 열차를 받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구간은 다리 위에 선로가 깔렸지만, 가운데의 '높은 거더' 구간은 범선이 지나갈 수 있도록 선로가 격자 거더 안쪽을 지나게 만들었어요. 높은 거더 구간은 13칸이었고, 길이는 3,149피트, 약 960m였어요.

공사 도중 문제가 생겼어요. 시추 조사에서는 강바닥 아래 암반이 얕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훨씬 깊었어요. 바우치는 교각 수를 줄이고 거더를 길게 바꿨고, 무게를 줄이려고 벽돌 교각 대신 주철 기둥을 엮은 철골 교각을 썼어요. 1878년 2월 영국 상무부는 날씨가 좋은 사흘 동안 다리를 검사한 뒤 시속 25마일(약 40km)의 속도 제한을 조건으로 승객 운행을 허가했어요. 검사관은 보고서에 다음에는 센 바람이 부는 날 열차가 지나갈 때의 영향을 직접 보고 싶다고 적었어요. 1879년 6월, 빅토리아 여왕이 이 다리를 이용한 직후 바우치는 기사 작위를 받았어요.

무너지기 전 남쪽 웜잇 쪽에서 바라본 첫 번째 테이 다리와 증기 열차
무너지기 전, 남쪽 끝 웜잇 쪽에서 본 첫 번째 테이 다리. 다리 위로 증기 열차가 보여요. · Great Britain. Board of Trade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바퀴에서 튄 불꽃, 그리고 어둠

그날 밤 바람은 보퍼트 풍력 계급 10~12로 다리와 거의 직각으로 불었어요. 던디에서는 풍속을 재지 않았고, 글래스고에서 한 시간 평균 시속 71마일(약 114km)이 기록됐어요. 오늘날의 한 해석은 돌풍이 시속 80마일(약 129km)에 이르렀을 것으로 봐요.

다리에는 한 번에 열차 한 대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기관사가 신호소에서 통표를 받아야 다리에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었어요. 저녁 7시 13분, 번티스랜드를 떠난 북영국철도 열차가 속도를 줄여 통표를 받고 다리로 들어섰어요. 기관차와 탄수차, 객차 다섯 량, 수하물차 한 량이었어요. 신호수는 기록을 하고 난로를 돌보느라 고개를 돌렸지만 신호소에 와 있던 친구는 열차를 계속 지켜봤어요. 열차가 약 180m쯤 갔을 때 동쪽 바퀴에서 불꽃이 튀는 게 보였어요. 바람이 바퀴 테두리를 선로에 밀어붙였기 때문이라는 증언이 나중에 나왔어요.

불꽃은 3분이 채 안 돼 열차가 높은 거더 구간에 들어갔을 때 멈췄어요. 그 순간 갑자기 밝은 빛이 번쩍였고, 열차의 꼬리등과 불꽃과 빛이 한꺼번에 사라지며 완전한 어둠이 됐어요. 신호수는 이 장면을 보지 못했고,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열차가 던디 쪽에 나타나지 않았고, 북쪽 끝 신호소와도 연락이 완전히 끊겨 있었어요.

테이 다리 붕괴 뒤 강물 위로 일부가 드러난 무너진 거더
붕괴 뒤 강물 위로 드러난 테이 다리의 무너진 거더. · Great Britain. Board of Trade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59명, 혹은 74~75명

강에 빠진 것은 열차만이 아니었어요. 높은 거더와 그것을 받치던 교각의 철골 상당 부분도 함께 무너졌어요. 잠수부들은 열차가 거더 안에 든 채로 가라앉아 있는 것을 찾아냈어요. 생존자는 없었고, 확인된 희생자 59명 가운데 시신은 46구만 수습됐어요.

희생자 수는 지금도 두 가지로 이야기돼요. 다리를 건너기 전 승객에게서 걷은 던디행 표는 56장이었고, 정기권 승객과 다른 목적지 승객, 철도 직원까지 더해 열차에 74~75명이 타고 있었다고 여겨졌어요. 75명이라는 숫자는 초기 지역 신문 보도가 사람을 이중으로 센 결과라는 주장도 있어요. 다만 조사 법정은 신문을 따르지 않고 선서한 증언으로 직접 계산했어요. 이 사고는 2024년 기준으로 영국 철도 역사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사람이 숨진 사고예요.

항목기록
사고 날짜1879년 12월 28일(일) 저녁 7시 13분 이후
날씨보퍼트 풍력 10~12, 다리와 거의 직각인 바람
열차기관차·탄수차, 객차 5량, 수하물차 1량
무너진 구간높은 거더 구간(13칸, 약 960m)과 교각 철골 상당 부분
희생자확인 59명(수습 46구), 탑승 추정 74~75명
속도 제한시속 25마일(약 40km), 자주 어겨짐
개통부터 붕괴까지1878년 6월 1일 ~ 1879년 12월 28일
1879년 테이 다리 철도 참사 뒤 구조 활동을 그린 당시 프랑스 삽화
테이 다리 참사 뒤의 구조 활동을 그린 당시 삽화.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시계로 잰 과속과 흔들리던 다리

사고 직후 조사 법정이 열렸어요. 난파선 감독관 헨리 캐더건 로서리가 주재하고, 철도 감독관 윌리엄 욜런드와 토목학회장 윌리엄 헨리 발로가 함께 맡았어요. 1880년 1월 3일부터 던디에서 증언을 듣기 시작했고, 토목 기술자 헨리 로에게 잔해 조사를 맡겼어요.

가장 눈길을 끈 증언은 다리 근처에 살던 전직 시장 로버트슨의 것이었어요. 정기권으로 다리를 오가던 그는 북쪽으로 가는 완행열차가 높은 거더 구간을 너무 빨리 달려 다리가 위아래, 옆으로 흔들린다고 느꼈어요. 던디 역장에게 세 번 항의했지만 달라지지 않자, 12월 중순부터는 북쪽으로 갈 때 배를 탔어요. 그는 회중시계로 열차가 높은 거더 960m를 지나는 시간을 쟀어요. 보통 60~65초였지만 두 번은 50초였어요.

1879년 여름 다리에서 일한 도장공들도 열차가 지나가면 다리가 흔들렸다고 말했어요. 한 목수는 옆으로 흔들리는 폭을 묻자 2~3인치(약 5~7.5cm)라고 했어요. 다리 점검을 맡은 헨리 노블은 기술자가 아닌 벽돌공이었어요. 그는 1878년 10월부터 교각의 대각선 버팀대 일부가 덜그럭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쐐기 사이에 쇳조각을 끼워 다시 조였어요. 다리의 접합부 4,000여 곳 가운데 약 100곳을 손봤고, 주철 기둥 네 개에서 금이 간 것을 발견해 쇠고리로 묶었어요.

'보몬트 에그'로 메운 주철 기둥

기둥을 만든 웜잇 주조 공장의 노동자들은 더 증언했어요. 기둥은 불순물이 많아 다루기 어려운 '클리블랜드 철'로 부어 만들었고, 거푸집을 바닷물로 적셨으며, 속심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기둥 벽 두께가 고르지 않았다고 했어요. 볼트 구멍이 뚫린 돌기가 덜 만들어지면 쇳물을 덧붙여 메웠고, 기포 같은 작은 결함은 '보몬트 에그'라는 메움재로 채운 뒤 그대로 썼어요. 공장 감독은 이 메움재를 따로 쌓아 두고 있었어요.

재료 시험에서는 연철과 주철 자체의 강도는 괜찮았어요. 문제는 연결부였어요. 버팀대와 돌기는 약 20톤에서 끊어져 예상보다 훨씬 약했고, 시험한 돌기 14개 가운데 4개는 결함이 있었어요. 볼트가 닿는 곳에 힘이 몰렸기 때문이에요. 바우치는 감리에 9,000파운드 넘게 썼다고 했지만(그의 전체 보수는 1만 500파운드) 그를 대신해 주물을 검사한 사람을 증인으로 내세우지 못했어요.

테이강에서 건져 올린 열차 잔해의 일부
테이강에서 건져 올린 열차의 일부. · Great Britain. Board of Trade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바람을 계산하지 않은 설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람이었어요. 바우치는 1873년 포스만 현수교를 설계할 때 왕립 천문대장 조지 에어리에게서 받은 조언을 따랐어요. 바람 압력이 아주 좁은 곳에서는 1제곱피트당 40파운드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긴 경간 전체로 평균하면 10파운드면 충분하다는 내용이었어요. 바우치는 이를 근거로 테이 다리에서는 바람 하중을 따로 고려하지 않았어요.

법정에 나온 에어리는 그 조언은 포스만의 현수교에 한정된 것이었고, 테이 다리라면 경간 전체에 1제곱피트당 40파운드가 걸릴 수 있다고 말했어요. 당시 기술자들의 생각은 제각각이었어요. 20파운드면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프랑스는 55파운드, 미국은 50파운드를 기준으로 쓰고 있었어요. 영국 상무부는 바람 압력에 대한 요구 사항을 따로 두고 있지 않았어요.

1880년 6월 말 법정은 하나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두 개의 보고서를 냈어요. 욜런드와 발로는 다리가 무너진 원인을 그날 밤의 폭풍을 견디기에 버팀대와 그 고정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로서리는 소수 의견서에서 잘못 짓고 잘못 관리한 구조물에 바람이 작용해 다리가 무너졌다고 썼고, 설계·시공·유지 관리의 결함에 대해 바우치에게 주된 책임이 있다고 지목했어요. 바우치는 사고 뒤 1년도 안 돼 명예가 무너진 채 세상을 떠났어요.

다시 놓인 다리와 '잠수부'라는 별명의 기관차

사고 뒤 영국에서 새로 짓는 다리는 1제곱피트당 최대 56파운드(약 2.7킬로파스칼)의 바람 하중을 견디도록 설계해야 했어요. 바우치가 맡았던 포스만 다리 설계는 쓰이지 않았고, 포스 철교는 존 파울러와 벤저민 베이커의 설계로 1883~1890년에 지어졌어요. 테이강에는 발로가 설계한 복선 철교가 첫 다리에서 18m 상류에 나란히 놓였어요. 1883년 7월 6일 착공해 1887년 7월 13일 개통했어요.

강에 빠졌던 기관차 224호는 건져 올려 고친 뒤 1919년까지 운행했어요. 철도원들은 이 기관차를 '잠수부'라고 불렀고, 미신을 믿는 기관사들은 이 기관차를 몰고 새 다리를 건너기를 꺼렸다고 해요. 옛 다리의 교각 밑동은 지금도 테이강 수면 위로 보이고, 다리 양쪽 끝 던디와 웜잇에는 추모비가 서 있어요.

테이 다리 참사 뒤 강물에서 건져 올린 북영국철도 224호 기관차
참사 뒤 강물에서 건져 올린 북영국철도 224호 기관차. · Alexander Wilson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사고는 엉뚱한 반응도 불렀어요. 일요일 활동을 제한하자는 안식일 엄수 운동가 일부는 이 사고를 안식일에 여행한 데 대한 하느님의 벌이라고 말했어요. 풍자 잡지 펀치는 이런 주장을 한 목사를 강하게 비판했어요. 시인 윌리엄 맥고나걸이 쓴 시 '테이 다리 참사'는 너무 서툴러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는 시로 유명해졌고, 독일 시인 테오도어 폰타네는 사고 열흘 만에 시 '테이강의 다리'를 발표했어요.

던디 교통 박물관에 전시된 첫 번째 테이 다리의 기둥 일부
던디 교통 박물관에 전시된 첫 번째 테이 다리의 기둥 일부(2020년). · NemesisA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숫자로 다시 보는 테이 다리

로버트슨이 잰 시간으로 속도를 계산해 볼 수 있어요. 3,149피트는 약 960m예요. 이 거리를 50초에 지나면 초속 약 19.2m, 시속 약 69km예요. 60초면 시속 약 58km, 65초면 시속 약 53km예요. 제한 속도 시속 25마일(약 40km)로 달렸다면 약 86초가 걸렸어야 해요. 로버트슨이 강가에서 잰 80초는 이와 가깝지만, 그가 탄 열차에서는 그런 시간이 나온 적이 없었어요.

바람 압력도 단위를 바꿔 보면 감이 와요. 1제곱피트당 1파운드는 약 47.9파스칼이에요. 바우치가 가정한 10파운드는 약 0.48킬로파스칼, 사고 뒤 기준이 된 56파운드는 약 2.7킬로파스칼로 5.6배예요. 1제곱미터로 바꾸면 56파운드 기준은 1㎡마다 약 273kg의 무게가 옆으로 미는 힘과 비슷해요. 개통한 1878년 6월 1일부터 붕괴한 1879년 12월 28일까지 다리가 버틴 기간은 575일이었어요.

바람 압력 기준1제곱피트당킬로파스칼(계산)
바우치가 따른 평균값10파운드약 0.48
에어리가 법정에서 말한 값40파운드약 1.9
미국 기준50파운드약 2.4
프랑스 기준55파운드약 2.6
사고 뒤 영국 기준56파운드약 2.7
태풍이나 강풍 경보가 내려지면 다리나 고가도로, 해안 도로를 지나는 일정은 미루는 것이 안전해요. 운행 중인 교통수단이 강풍으로 멈추면 임의로 내리지 말고 안내에 따르세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