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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야기

시속 56km 당밀 쓰나미가 도시를 덮쳤다: 1919년 보스턴 당밀 홍수 사고의 진짜 원인과 21명의 희생

1919년 1월 보스턴 노스엔드에서 높이 15m 탱크가 터지며 당밀 1만 2천 톤이 시속 56km로 거리를 덮쳤어요. 21명이 숨진 보스턴 당밀 홍수 사고의 경과와 탱크가 터진 원인, 끈적한 당밀이 구조를 어렵게 만든 이유, 사고 뒤 바뀐 건축 법규까지 기록을 바탕으로 정리했어요.

1919년 보스턴 당밀 홍수 직후 무너진 건물 잔해와 당밀로 뒤덮인 노스엔드 거리
사고 직후의 커머셜 스트리트.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로 당밀이 흘러 있어요. · BPL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홍수라고 하면 물을 떠올리죠. 그런데 1919년 1월 15일 미국 보스턴에서는 갈색의 끈적한 당밀이 거리를 휩쓸었어요. 높이 15m짜리 탱크가 터지면서 흘러나온 당밀은 시속 56km로 골목을 밀고 내려갔고, 건물을 무너뜨리고, 고가 철도의 기둥을 휘게 만들고, 21명의 목숨을 앗아 갔어요. 이름만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이 사고는 부실한 설계와 빠뜨린 안전 검사가 겹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보여 주는 사례예요. 그날 정오 무렵 노스엔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록을 따라가 볼게요.

1919년 1월 15일 낮 12시 30분, 노스엔드

사고가 난 곳은 보스턴 북쪽 끝 항구와 맞닿은 동네 노스엔드의 커머셜 스트리트 529번지예요. 이곳에 퓨리티 증류 회사의 당밀 저장 탱크가 서 있었어요. 당밀은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뽑고 남은 시럽인데, 발효시키면 공업용 알코올을 만들 수 있어요. 탱크는 배로 들여온 당밀을 담아 두었다가 근처 공장으로 보내는 중간 창고 구실을 했어요. 퓨리티 증류 회사는 1917년에 미국산업알코올(USIA)이라는 회사에 인수된 상태였어요.

낮 12시 30분쯤 탱크가 갑자기 갈라졌어요. 탱크가 무너지면서 안에 있던 당밀이 한꺼번에 쏟아졌어요. 점심시간이라 거리에는 일꾼과 주민, 놀던 아이들이 있었어요.

탱크 한 개에 담긴 1만 2천 톤

항목기록된 값미터법으로 바꾸면
탱크 높이50피트약 15m
탱크 지름90피트약 27m
최대 용량230만 미국 갤런약 8,700㎥
당밀 무게약 1만 3천 쇼트톤약 1만 2천 톤
당밀 밀도갤런당 약 12파운드물보다 약 40% 무거움
물결 속도시속 35마일시속 약 56km
물결 높이(최고)25피트약 8m

숫자를 보면 이 사고가 왜 그렇게 파괴적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탱크 하나에 담긴 당밀이 8,700㎥, 무게로 1만 2천 톤이었어요. 당밀은 물보다 약 40% 무거워서 같은 부피의 물이 흘렀을 때보다 훨씬 큰 힘으로 부딪혀요. 이 무게가 15m 높이에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며 시속 56km의 물결이 됐어요. 도심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와 비슷한 빠르기예요. 물결의 높이는 가장 높은 곳에서 8m로 추정되는데, 자료에 따라 4.5m에서 12m까지 차이가 있어요. 여러 블록이 60~90cm 깊이의 당밀에 잠겼어요.

사고 전 보스턴 노스엔드 항구 옆에 서 있던 원통형 당밀 저장 탱크
사고 전에 찍힌 노스엔드의 당밀 탱크. 촬영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아요. · The Bostonian Society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고가 철도 기둥까지 휘게 한 힘

쏟아진 당밀은 길가의 건물을 기초째 밀어냈어요. 터진 탱크의 강철판은 파편이 되어 날아가 애틀랜틱 애비뉴를 지나는 고가 철도의 대들보에 박혔고, 고가 위를 달리던 전차가 잠깐 선로에서 들릴 정도였어요. 사람들은 당밀에 휩쓸리거나 무너진 건물에 깔렸어요. 말 여러 마리도 당밀 속에 빠져 죽었어요. 최종 집계는 사망 21명, 부상 약 150명이에요.

당밀 탱크 파편에 맞아 휘어진 보스턴 애틀랜틱 애비뉴 고가 철도 구조물
탱크 파편에 부서진 고가 철도 구조물.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근처 항구에 정박해 있던 훈련선 USS 낸터킷호의 생도 116명이었어요. H. J. 코플랜드 소령이 이들을 이끌었어요. 곧이어 보스턴 경찰, 적십자, 육군과 해군 병력이 합류했어요. 바로 옆에 있던 소방서 엔진 31도 당밀에 큰 피해를 입었고, 이곳 소방관 조지 레이(38세)가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 됐어요.

희생자 21명 가운데 가장 어린 사람은 열 살 동갑내기 마리아 디 스타시오와 파스콸레 이안토스카였어요. 가장 나이 많은 희생자는 78세의 마이클 시넛이었어요. 점심시간의 평범한 거리에 있던 아이부터 노인까지가 한꺼번에 당밀에 휩쓸린 거예요.

끈적한 당밀이 구조를 막았어요

당밀은 독특한 성질이 있어요. 힘을 받아 빠르게 흐를 때는 묽어지고, 멈추면 다시 걸쭉해져요. 게다가 차가워질수록 훨씬 끈끈해져요. 사고 당일 보스턴은 겨울이었고, 탱크에서 쏟아질 때 빠르게 흐르던 당밀은 거리로 퍼져 나가 식으면서 금세 굳어 갔어요. 당밀 속에 갇힌 사람들은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했고, 구조대도 허리까지 차는 당밀을 헤치고 다녀야 했어요.

이 설명은 2016년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의 실험으로 뒷받침됐어요. 연구진은 1919년의 신문, 지도, 날씨 기록을 모으고, 차갑게 식힌 옥수수 시럽을 노스엔드의 축소 모형에 흘려 보냈어요. 그 결과 당시 보도된 빠른 물결 속도가 충분히 가능한 수치였고, 당밀이 빠르게 식으면서 걸쭉해져 구조를 방해했다는 결론을 냈어요.

수색은 나흘 동안 이어졌어요. 항구로 휩쓸려 간 희생자 가운데 일부는 서너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어요. 정리 작업에는 소방정이 퍼 올린 바닷물과 모래가 쓰였어요. 바닷물로 당밀을 씻어 내고 모래로 흡수시키는 방식이었어요. 사고 현장 주변을 정리하는 데만 몇 주가 걸렸고, 보스턴 항구의 바닷물은 여름까지 갈색으로 남아 있었어요. 사람들의 신발과 옷에 묻은 당밀은 지하철 승강장과 전차, 공중전화 수화기, 집 안까지 퍼졌어요. 동네 주민들은 그 뒤로도 수십 년 동안 더운 여름날이면 당밀 냄새가 났다고 회고했어요.

탱크는 왜 터졌을까요

사고 원인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고 여러 요인이 겹친 것으로 봐요. 기록에 남은 정황부터 보면 날씨가 있어요. 사고 전 며칠 동안 보스턴은 몹시 추웠는데, 사고 당일에는 기온이 섭씨 4도 위로 올랐어요. 앞선 기간을 통틀어 보면 기온이 영하 17도 무렵에서 영상 5도까지 크게 오른 셈이에요. 그리고 사고 이틀 전에는 데운 당밀이 새로 탱크에 채워졌어요. 차가운 당밀과 따뜻한 당밀이 섞이고 기온이 오르면서 내용물이 팽창했고, 발효로 생긴 가스가 탱크 안의 압력을 높였을 가능성이 제기됐어요.

  • 강철판이 너무 얇았어요. 2014년의 분석은 탱크 벽의 두께가 필요한 두께의 절반 정도였다고 봤어요.
  • 강철에 망간이 부족해서 부서지기 쉬웠고, 리벳 구멍 주변에 균열이 생겨 있었어요.
  • 탱크 아래쪽 맨홀 덮개 근처의 피로 균열이 한계 크기까지 자랐을 가능성이 있어요.
  • 1915년 처음 채웠을 때부터 당밀이 새는 곳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 물을 채워 새는 곳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시험을 하지 않았어요.

마지막 항목이 특히 뼈아파요. 탱크 공사를 맡은 회사 재무 담당자 아서 젤은 건축이나 공학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탱크에 물을 채워 새는 곳을 점검하는 것 같은 기본 안전 검사를 하지 않았고, 탱크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대한 경고도 흘려들었어요.

시기도 의미심장해요. 사고 바로 다음 날인 1919년 1월 16일, 미국에서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수정헌법 제18조가 비준됐어요. 금주법이 시행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알코올을 만들어 두려고 당밀을 과하게 채웠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에요.

보스턴 당밀 홍수를 보도한 1919년 1월 16일자 보스턴 포스트 1면
사고 다음 날인 1919년 1월 16일자 보스턴 포스트 1면.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이 탱크는 1915년에 처음 채운 뒤 사고 때까지 가득 채워진 것이 여덟 번이었다고 기록돼 있어요. 사고 전날에는 배로 실어 온 데운 당밀이 새로 들어왔어요. 2014년에 이 탱크를 분석한 기술자 로널드 메이빌은 탱크의 강철판 두께가 그만한 크기의 탱크에 필요한 두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어요. 사고를 자세히 다룬 책으로는 스티븐 풀레오의 『다크 타이드(Dark Tide)』가 있어요.

3년 걸린 재판과 바뀐 건축 법규

주민 119명이 탱크의 주인인 미국산업알코올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어요. 회사는 무정부주의자들이 탱크를 폭파했다고 맞섰어요. 법원이 지정한 감사인 휴 W. 오그던은 3년에 걸친 심리 끝에 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합의금은 62만 8천 달러였어요. 2025년 가치로 약 1,170만 달러예요. 희생자 유족은 한 사람당 약 7천 달러를 받은 것으로 전해져요.

이 사고는 법을 바꿨어요. 이후 이런 구조물을 지을 때는 자격을 갖춘 건축가와 토목 기술자가 설계와 시공을 감독하도록 건축 규정이 강화됐어요. 탱크 하나를 세우면서 계산서를 확인하고 서명할 전문가가 없었다는 점이 이 사고의 본질이었기 때문이에요.

지금의 사고 현장

탱크가 서 있던 자리는 지금 랭곤 공원이라는 시민 체육 시설이 됐어요. 바로 옆 푸오폴로 공원에는 보스턴 역사 협회가 세운 안내판이 있고, 안내판은 탱크의 구조적 결함과 계절에 맞지 않게 따뜻했던 기온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적고 있어요. 사고 100주년인 2019년 1월 15일에는 지표 투과 레이더로 탱크의 콘크리트 기초가 랭곤 공원 야구장 아래 약 51cm 깊이에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어요. 같은 날 희생자 21명의 이름이 한 명씩 낭독됐어요.

보스턴 당밀 홍수 당시 탱크 위치와 피해 범위를 표시한 노스엔드 지도
탱크 위치와 주변 건물을 표시한 지도. 1895년과 1915년 보스턴 시 공식 지도를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 User:IMeowbot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단위로 다시 보는 당밀 홍수

이 사고의 기록은 대부분 미국식 단위로 남아 있어요. 피트, 갤런, 파운드, 쇼트톤, 마일이 섞여 있어서 우리에게는 감이 잘 오지 않아요. 230만 갤런을 리터로 바꾸면 약 870만 리터예요. 2리터 생수병 435만 개 분량이에요. 시속 35마일은 시속 약 56km이고, 섭씨 4도는 화씨 약 40도예요. 쇼트톤은 2,000파운드, 약 907kg이라서 우리가 쓰는 톤(1,000kg)과도 달라요. 1만 3천 쇼트톤이 약 1만 2천 톤으로 바뀌는 까닭이에요. 기록의 숫자를 실감 나게 읽고 싶다면 단위를 한 번씩 바꿔 보세요.

보스턴 당밀 홍수의 피해 규모와 원인은 자료에 따라 수치가 조금씩 달라요. 이 글은 위키백과와 그 출처에 기록된 값을 따랐고, 범위가 있는 수치는 범위를 함께 적었어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