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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야기

킬로그램과 파운드를 헷갈려 하늘에서 연료가 바닥났다: 1983년 에어캐나다 143편 '김리 글라이더' 비상착륙

1983년 에어캐나다 143편 보잉 767은 연료를 킬로그램이 아니라 파운드로 계산하는 바람에 필요한 양의 절반도 싣지 못하고 이륙했어요. 고도 4만 1천 피트에서 두 엔진이 모두 멈춘 여객기가 17분을 활공해 옛 공군 기지에 내려앉기까지, 단위 착오가 어떻게 생겼는지 계산으로 풀어 봤어요.

1983년 캐나다 김리 옛 공군 기지 활주로에 앞바퀴가 접힌 채 멈춘 에어캐나다 143편 보잉 767
비상착륙 직후의 에어캐나다 143편. 앞바퀴가 접혀 기수가 땅에 닿아 있어요. · FAA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고도 1만 2천 미터에서 비행 중인 여객기의 엔진 두 개가 동시에 꺼졌어요. 고장이 아니라 연료가 바닥난 거예요. 출발 전에 연료를 계산하면서 킬로그램과 파운드를 헷갈린 탓이었어요. 1983년 7월 23일 캐나다 몬트리올을 떠나 에드먼턴으로 가던 에어캐나다 143편 이야기예요. 이 비행기는 글라이더처럼 미끄러져 내려와 옛 공군 기지 활주로에 내려앉았고, 그날부터 '김리 글라이더'라는 별명으로 불렸어요.

새 비행기, 새 단위

사고 비행기는 등록 번호 C-GAUN, 1983년에 만든 보잉 767-200 계열의 새 비행기였어요. 탑승자는 승객 61명과 승무원 8명, 모두 69명이었어요. 당시 캐나다 항공업계는 영국식 단위에서 미터법으로 넘어가는 중이었어요. 파운드와 킬로그램이 한 회사 안에 함께 쓰이던 시기였고, 이 767의 연료 계산은 킬로그램 기준이었어요.

사고 몇 달 전 1983년 3월에 촬영된 에어캐나다 보잉 767 C-GAUN
사고 넉 달 전인 1983년 3월의 C-GAUN. · Pierre Langloi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꺼진 연료계, 손으로 한 계산

사고의 출발점은 연료량 표시 장치의 고장이었어요. 조종석의 연료계가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았어요. 정비진과 조종사는 연료 탱크에 막대를 넣어 깊이를 재는 '딥스틱' 방식으로 남은 연료를 확인한 뒤 출발하기로 했어요. 막대로 재면 연료의 부피, 곧 리터가 나와요. 몬트리올에서 잰 값은 7,682리터였어요. 그런데 비행기의 운항 계산은 무게, 곧 킬로그램으로 해요. 리터를 킬로그램으로 바꾸려면 연료의 밀도를 곱해야 해요.

구분써야 했던 값실제로 쓴 값
연료 밀도약 0.803kg/L1.77(파운드/리터 값)
다음 구간에 필요한 연료2만 2,300kg2만 2,300을 채웠다고 판단
실제로 실린 연료약 1만 100kg(필요량의 절반 미만)

제트 연료 1리터의 무게는 약 0.803kg이에요. 이것을 파운드로 쓰면 약 1.77파운드예요. 그런데 계산에는 1.77이 쓰였어요. 그러면 결과는 킬로그램이 아니라 파운드가 돼요. 그들은 '2만 2,300'이라는 숫자에 맞춰 연료를 채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채운 것은 2만 2,300파운드였어요. 1파운드는 약 0.4536kg이니까 2만 2,300파운드는 약 1만 115kg이에요. 필요한 양의 45%쯤만 싣고 이륙한 셈이에요.

몬트리올에서 실제로 더 넣은 연료는 4,917리터였어요. 올바르게 계산했다면 2만 88리터를 넣어야 했어요. 중간 기착지인 오타와에서도 같은 계산이 되풀이됐어요. 연료계는 여전히 꺼져 있었고, 같은 1.77이 다시 쓰였어요. 착오를 바로잡을 두 번째 기회도 지나갔어요.

이륙해서는 안 되는 비행기였어요

연료량 표시 장치는 그 전에도 말썽이었어요. 보잉은 다른 767에서도 연료량 표시가 맞지 않는 문제가 나오자 정기 점검을 하라는 정비 지침을 낸 상태였어요. 이 비행기의 장치는 에드먼턴에서 고장 났는데 예비 부품이 없었어요. 정비사는 두 번째 회로의 차단기를 뽑아 표시를 붙여 두었어요.

규정은 분명했어요. 최소 장비 목록(MMEL)에 따르면 연료계가 꺼진 비행기는 법적으로 날 수 없었어요. 그런데 피어슨 기장은 딥스틱으로 연료를 확인하면 안전하다고 믿었어요. 정비 기록부에 서명이 되어 있으면 그것을 장비 목록보다 우선하는 관행도 있었어요. 여러 사람이 조금씩 잘못 알고, 조금씩 넘어간 결과가 겹친 거예요.

고도 4만 1천 피트에서 엔진 두 개가 멈췄어요

비행기가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 상공 4만 1천 피트, 약 1만 2,500m를 날 때 왼쪽 연료 압력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가 떴어요. 몇 초 만에 왼쪽 엔진이, 이어 오른쪽 엔진이 멈췄어요. 엔진이 꺼지자 전기를 만드는 장치도 멈춰 조종석의 계기판 상당수가 꺼졌어요.

비행기 아래쪽에서 작은 프로펠러처럼 생긴 비상용 풍력 발전기(RAT)가 펼쳐져 조종에 필요한 유압을 겨우 만들어 냈어요. 하지만 이 힘으로는 플랩과 슬랫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착륙할 때 속도를 줄여 주는 날개 장치를 쓸 수 없다는 뜻이었어요. 배터리로 켜진 계기에는 상승·하강 속도를 알려 주는 계기도 없었어요. 767의 두 엔진이 모두 멈추는 상황은 승무원 훈련에 한 번도 들어 있지 않았어요.

글라이더 조종사였던 기장

기장 밥 피어슨은 경험 많은 글라이더 조종사였어요. 그는 활공 속도를 220노트로 잡았어요. 이 비행기는 약 12:1의 비율로 활공한 것으로 추정돼요. 고도 1m를 잃을 때마다 앞으로 12m쯤 나아갔다는 뜻이에요. 767의 가장 좋은 활공비는 약 20:1이에요. 실제로 측정한 한 구간에서는 10해리, 약 19km를 나아가는 동안 고도 5,000피트를 잃었어요. 위니펙 공항까지는 갈 수 없다는 계산이 나왔고, 부기장 모리스 캥탈이 예전에 근무했던 김리의 옛 캐나다 공군 기지를 대안으로 골랐어요.

문제는 그 기지가 이미 문을 닫았다는 것이었어요. 활주로 하나는 자동차 경주장으로 바뀌어 있었고, 마침 그날 경주가 열리고 있었어요. 승무원들은 이 사실을 몰랐어요.

옆으로 미끄러지며 고도를 버리다

활주로에 다가갔을 때 비행기는 너무 높고 빨랐어요. 플랩을 쓸 수 없으니 고도를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았어요. 피어슨은 '포워드 슬립'이라는 글라이더 조종 기술을 썼어요. 비행기를 비스듬히 틀어 옆으로 미끄러지게 하면 공기 저항이 커져서 속도를 많이 늘리지 않고도 고도를 빨리 잃을 수 있어요. 대형 여객기에서는 거의 쓰지 않는 기술이에요.

바퀴는 중력으로 내렸지만 앞바퀴가 끝까지 고정되지 않았어요. 착륙하자마자 피어슨은 브레이크를 세게 밟았고 타이어 두 개가 터졌어요. 앞바퀴가 접히면서 기수가 땅에 끌렸고, 이 마찰이 오히려 비행기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됐어요. 활주로 가운데에 설치된 가드레일은 주 바퀴 사이로 지나갔어요. 비행기는 연료가 떨어진 지 약 17분 만에 멈췄어요.

기수가 낮아지고 꼬리가 들린 자세라 뒤쪽 비상 탈출 미끄럼틀이 땅까지 닿지 않았고, 탈출하던 승객들이 가볍게 다쳤어요. 기수에서 작은 불이 났지만 경주장 직원들이 껐어요. 사망자는 없었고 부상자는 10명이었어요.

그날 김리 경주장에서는 캐나다 자동차 스포츠 클럽 연맹이 인정한 스포츠카 경주가 열리고 있었어요. 활주로 주변은 자동차와 캠핑카로 가득했어요. 비행기는 김리에서 임시 수리를 받고 이틀 뒤 위니펙의 정비 기지로 날아가 본격적인 수리를 받았어요.

조사 결과와 그 뒤

1985년 4월에 나온 최종 보고서는 사고의 책임을 에어캐나다의 '조직과 장비의 결함'에 돌렸어요. 승무원의 전문성과 솜씨는 높이 평가했어요. 그래도 회사는 피어슨 기장을 6개월 강등했고 캥탈 부기장에게는 2주 정직 처분을 내렸어요. 정비사 세 명도 정직됐어요. 두 조종사는 1985년 국제항공연맹(FAI)의 우수 비행 표창을 받았어요. 캥탈은 1989년 기장이 됐어요.

비행기는 수리를 마치고 다시 하늘을 날았어요. 마지막 영업 비행은 2008년 1월 1일이었고, 같은 달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의 비행기 보관 시설로 옮겨졌어요. 기체는 2014년 초 해체됐고, 동체 외피 일부는 수하물 꼬리표로 만들어졌어요. 김리에는 2017년 6월 이 사고를 기억하는 전시관이 문을 열었어요.

2008년 퇴역 후 미국 모하비 비행기 보관 시설에 세워진 김리 글라이더 C-GAUN
퇴역 뒤 2008년 모하비에 세워진 C-GAUN. · Akradecki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이 착륙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는 뒷이야기가 말해 줘요. 사고 뒤 밴쿠버의 비행 시뮬레이터에서 다른 승무원들에게 같은 상황을 주고 착륙을 시도하게 했더니 여러 번 모두 추락했어요. 이 사고는 1995년 TV 영화 「폴링 프롬 더 스카이: 플라이트 174」의 소재가 되기도 했어요. 사고 25주년인 2008년 7월 23일에는 김리에서 피어슨과 캥탈을 기리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벽화가 공개됐어요. 캥탈은 2015년 68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측정된 구간의 수치로도 활공비를 확인할 수 있어요. 10해리는 약 18.5km이고 5,000피트는 약 1,524m예요. 18.5km를 1.524km로 나누면 약 12.2가 나와요. 조사에서 추정한 약 12:1과 맞아떨어지는 값이에요. 최종 보고서는 1985년 4월 조지 H. 록우드의 이름으로 나왔어요.

계산으로 다시 보는 김리 글라이더

이 사고의 숫자는 단위 두 개 사이의 비율로 정리돼요. 1kg은 약 2.2046파운드예요. 0.803kg/L를 파운드로 바꾸면 0.803 × 2.2046 = 약 1.77파운드/L예요. 두 숫자가 가리키는 연료는 같지만, 1.77을 곱한 결과를 킬로그램으로 읽으면 실제보다 2.2배 많다고 착각하게 돼요. 반대로 말하면 실제 연료는 생각한 양의 약 45%였어요. 4만 1천 피트는 약 12.5km이고, 220노트는 시속 약 407km예요. 활공비 12:1로 12.5km 높이에서 미끄러지면 이론상 약 150km를 갈 수 있어요. 계기와 계산, 그리고 단위 하나가 승객 69명의 운명을 갈랐어요.

이 글은 사고 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썼어요. 실제 비행 중의 연료와 무게 계산은 항공사와 제작사가 정한 절차와 승인된 장비로만 해야 해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