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5년 11월 1일 토요일은 가톨릭의 큰 축일인 만성절이었어요.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는 집과 성당마다 촛불이 켜져 있었어요. 오전 9시 40분 무렵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당시 기록에 따르면 흔들림은 3분 30초에서 6분까지 이어졌고, 도심 땅바닥에 폭 5m의 틈이 벌어졌어요.
지진은 시작일 뿐이었어요. 약 40분 뒤 쓰나미가 항구와 도심을 덮쳤고, 넘어진 촛불에서 시작된 불이 몇 시간 동안 도시를 태웠어요. 리스본 인구 약 20만 명 가운데 3만~4만 명이 숨졌고 건물의 85%가 무너지거나 불탔어요. 이 재난은 유럽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큰 논쟁거리가 됐고, 넓은 지역에 걸친 피해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첫 지진으로 근대 지진학과 지진 공학이 태어나는 계기가 됐어요.
규모 7.7 이상, 대서양 바다 밑에서 시작된 흔들림
지진학자들은 이 지진의 규모를 모멘트 규모 7.7 이상으로 봐요. 진앙은 대서양 바다 밑, 포르투갈 남서쪽 끝 상비센테곶에서 서남서쪽으로 약 200km, 리스본에서 남서쪽으로 약 290km 떨어진 곳으로 추정돼요. 리스본이 겪은 대지진으로는 1356년과 1531년에 이어 세 번째로 알려진 것이에요.

진앙이 이베리아반도 서쪽 대서양이라는 데에는 학자들 의견이 늘 같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오랫동안 논쟁거리였어요. 처음에는 리스본 남서쪽 약 320km의 고린지 해령이 유력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 실제로 관측된 쓰나미 피해와 맞으려면 진앙이 포르투갈 해안에 더 가까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1992년 아조레스-지브롤터 변환 단층을 따라 해저를 조사한 결과 상비센테곶 남서쪽에서 길이 50km, 수직 어긋남이 1km가 넘는 충상 단층이 발견됐고, 이것이 본진을 일으킨 구조일 수 있다고 봐요.
물러난 바다, 40분 뒤 밀려온 쓰나미
흔들림이 멈추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건물이 무너질까 두려워 탁 트인 부두로 몰려갔어요. 그들 눈앞에서 바닷물이 빠지며 잃어버린 화물과 난파선이 흩어진 진흙 바닥이 드러났어요. 지진 약 40분 뒤 쓰나미가 항구와 도심을 집어삼켰어요. 당시 기록에는 물이 테주강을 거슬러 너무 빨리 올라와 말을 탄 사람들도 휩쓸리지 않으려고 높은 곳으로 힘껏 달려야 했다고 적혀 있어요. 그 뒤로 파도가 두 번 더 밀려왔어요.

피해는 리스본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포르투갈 남부, 특히 알가르브 지방은 해안 마을 거의 모두가 크게 부서졌어요. 리아포르모자의 모래톱이 막아 준 파루만 예외였어요. 라고스에서는 파도가 성벽 꼭대기까지 닿았어요. 아조레스 제도의 항구들은 바닷물이 약 150m 안쪽까지 밀려들어 대부분 쓰나미로 부서졌고, 마데이라섬의 푼샬도 큰 피해를 입었어요. 스페인에서는 쓰나미가 안달루시아의 대서양 해안을 휩쓸어 카디스가 피해를 입었어요.
흔들림은 유럽 전역에서 핀란드까지,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느껴졌고, 일부 기록에는 그린란드와 카리브해까지 적혀 있어요. 북아프리카 해안에는 높이 20m에 이르는 쓰나미가 덮쳤고, 파도는 대서양을 건너 마르티니크와 바베이도스에도 닿았어요. 영국 남부 콘월에는 3m 높이의 쓰나미가 왔고, 아일랜드 골웨이에서는 성벽의 '스페인 아치' 일부가 부서졌어요. 2015년에는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 해안까지 파도가 닿았다는 사실이 브라질 관리들의 편지로 확인됐어요.

만성절 촛불에서 번진 불과 사라진 왕실 도서관
만성절이라 도시 곳곳의 집과 성당에 켜 두었던 촛불이 흔들림에 넘어지며 불이 났어요. 불은 화염 폭풍으로 커져 몇 시간 동안 타올랐고, 불길에서 30m 떨어진 사람까지 숨이 막혀 쓰러졌다고 해요. 지진에는 크게 상하지 않았던 건물들도 뒤이은 불에 타 버렸어요.
잃은 것의 목록은 길어요. 일곱 달 전 문을 연 새 오페라 극장 '오페라 두 테주'는 완전히 불탔어요. 지금의 코메르시우 광장 자리 테주강 바로 옆에 있던 히베이라 왕궁은 지진과 쓰나미로 무너졌고, 그 안에 있던 7만 권 규모의 왕실 도서관과 티치아노, 루벤스, 코레조의 그림을 비롯한 수백 점의 미술품이 사라졌어요. 바스쿠 다 가마 같은 초기 항해가들의 탐험 기록을 담은 왕실 문서고도 함께 없어졌어요. 당시 가장 큰 공공 병원이던 로시우 광장의 왕립 만성 병원은 불에 타 환자 수백 명이 숨졌어요.

리스본 대성당과 상비센테 드 포라 성당 등 도시의 주요 성당들도 부서졌어요. 포르투갈 특유의 16세기 마누엘 양식 건축물도 대부분 이때 사라졌어요. 오늘날 리스본을 찾는 사람들은 지붕이 없어진 카르무 수도원 폐허를 걸어 볼 수 있는데, 리스본 시민들이 그날의 파괴를 기억하도록 일부러 남겨 둔 것이에요.

사망자 수는 지금도 범위로만 말할 수 있어요. 경제사학자 아우바루 페레이라는 리스본에서 3만~4만 명이 숨졌다고 추정했고, 모로코에서도 1만 명이 더 숨졌을 수 있어요. 그는 포르투갈, 스페인, 모로코를 합친 전체 사망자를 4만~5만 명으로 봤어요. 2009년 연구는 당시 보고들이 모호하고 11월 18~19일에 이어진 다른 지진 보고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어요.
"죽은 이를 묻고 산 이를 돌보라", 폼발 후작의 수습
왕실 가족은 무사했어요. 국왕 주제 1세는 해 뜰 무렵 미사를 드린 뒤 휴일을 리스본 밖에서 보내고 싶다는 공주의 바람에 따라 도시를 떠나 있었어요. 이 일 뒤로 왕은 벽 안에서 지내는 것을 두려워하게 됐고, 궁정은 당시 리스본 외곽이던 아주다 언덕의 거대한 천막 단지로 옮겨 갔어요. 왕의 폐소 공포는 평생 나아지지 않았고, 그가 죽은 뒤에야 딸 마리아 1세가 천막 자리에 아주다 궁전을 짓기 시작했어요.

재상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이 멜루, 훗날의 폼발 후작도 살아남았어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죽은 이를 묻고 산 이를 돌보라"고 답했다고 전해져요. 그는 불을 끌 사람들을 보내고, 병이 퍼지기 전에 수천 구의 시신을 치우게 했어요. 관습과 교회의 뜻을 거슬러 많은 시신을 바지선에 실어 테주강 하구 밖 바다에 수장했어요.
무너진 도시의 질서를 지키려고 군대가 배치됐고, 약탈을 막으려고 도시의 높은 곳마다 교수대가 세워졌어요. 30명 넘는 사람이 공개 처형됐어요. 군대는 일할 수 있는 시민들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구호와 재건 작업에 동원했어요. 폼발의 이런 신속한 대응은 그를 벼락출세한 사람으로 여기던 옛 귀족 세력의 힘을 사실상 꺾었어요. 하지만 국왕을 향한 반감이 조용히 커졌고, 이는 1758년 국왕 암살 미수 사건과 아베이루 공작, 타보라 가문 숙청으로 이어졌어요.
군인들이 행진하며 시험한 유럽 최초의 내진 건물
지진 한 달 남짓 뒤인 1755년 12월 4일, 왕국의 수석 기술자 마누엘 다 마이아가 리스본 재건 계획을 내놓았어요. 리스본을 버리는 안부터 완전히 새 도시를 짓는 안까지 네 가지였어요. 가장 싼 첫 번째 안은 옛 재료를 다시 써서 옛 도시를 복구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안은 일부 거리를 넓히는 것이었어요. 네 번째 안은 저지대 바이샤 지구 전체를 밀어 버리고 '거리낌 없이 새 거리를 내자'는 대담한 계획이었어요. 왕과 재상은 이 네 번째 안을 골랐어요.
1년도 안 돼 도시의 잔해가 치워졌고, 넓은 광장과 곧게 뻗은 큰길, 넓힌 거리가 새 리스본의 원칙이 됐어요. 이렇게 지은 폼발 양식 건물은 유럽에서 가장 이른 내진 건축 가운데 하나예요. 작은 나무 모형을 만들어 그 주위로 군인들을 행진시켜 지진을 흉내 내며 시험했어요. 오늘날 '폼발 바이샤'라고 불리는 이 구역은 리스본의 이름난 명소이고, 알가르브의 빌라헤알 드 산투안토니우 등 다른 도시 일부도 같은 원칙으로 다시 지어졌어요.

볼테르와 칸트를 흔든 지진, 성당 문서고에 남은 설문지
큰 축일에 신앙심 깊은 가톨릭 국가의 성당을 거의 모두 무너뜨린 이 지진을 두고, 신학자와 철학자들은 신의 심판이라는 해석을 놓고 다퉜어요. 볼테르는 소설 『캉디드』와 「리스본 재앙에 관한 시」에서 이 지진을 다뤘어요. 『캉디드』는 자비로운 신이 다스리는 이 세상이 '가능한 모든 세계 가운데 최선'이라는 생각을 공격하는데, 리스본은 그 생각에 대한 반례였어요. 장자크 루소는 너무 많은 사람이 좁은 도시에 몰려 살아서 피해가 컸다고 보고, 이를 도시 생활에 반대하는 근거로 삼았어요.
젊은 이마누엘 칸트는 소식지에 실린 정보를 모두 모아 1756년 리스본 지진에 관한 글 세 편을 냈어요. 뜨거운 가스로 찬 거대한 땅속 동굴이 움직여 지진이 난다는 그의 이론은 틀렸지만, 지진을 초자연이 아닌 자연의 원인으로 설명하려 한 첫 체계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였어요.
폼발은 사실 자료도 모았어요. 나라 안 모든 교구에 지진이 언제 시작돼 얼마나 이어졌는지, 흔들림이 어느 방향에서 더 셌는지, 건물이 한쪽으로 더 쓰러졌는지, 몇 명이 죽었는지, 바다가 먼저 차올랐는지 빠졌는지, 불이 났다면 얼마나 탔는지를 묻는 질문지를 보냈어요. 사제들의 답변은 지금도 토레 두 톰부 국립 문서고에 보관돼 현대 과학자들이 그날을 재구성하는 데 쓰여요. 지진을 대규모로 객관적으로 조사하려 한 첫 시도였기에 폼발은 근대 지진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아요.
경제 피해도 컸어요. 2009년 연구는 지진 피해가 포르투갈 국내총생산의 32~48%에 이르렀다고 추정했어요. 재건 과정에서 건설 노동자 임금이 올랐고, 이 지진은 포르투갈이 영국에 반쯤 기대던 경제 구조를 바꾸는 계기도 됐어요. 1780년 마리아 1세가 세운 카자 피아는 지진 뒤의 사회 혼란 속에서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거처와 교육을 주려고 만든 기관이에요.
숫자로 다시 보는 리스본 대지진
인구 약 20만 명 가운데 3만~4만 명이 숨졌다면 리스본 시민 다섯~일곱 명 가운데 한 명꼴인 15~20%가 하루아침에 목숨을 잃은 거예요. 진앙에서 리스본까지 약 290km를 쓰나미가 약 40분 만에 왔다고 단순하게 나누면 평균 시속 약 435km가 나와요. 실제 파도가 지나간 길은 직선이 아니고 진앙 위치도 추정이라 대략적인 값이지만, 말을 탄 사람이 전력으로 달려야 했다는 기록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어요.
날짜로 보면 11월 1일 지진에서 12월 4일 재건안 발표까지 33일이 걸렸어요. 1531년 지진으로부터는 224년 만에 다시 대지진이 온 셈이에요. 콘월에 닿은 3m 쓰나미는 약 9.8피트, 북아프리카 해안의 20m는 약 66피트예요. 아조레스에서 바닷물이 들어온 150m는 축구장 길이 하나 반쯤 돼요.
| 항목 | 기록 | 환산·비교 |
|---|---|---|
| 발생 시각 | 1755.11.1 오전 9시 40분 무렵 | 만성절 아침 |
| 규모 | 모멘트 규모 7.7 이상 | 진앙은 리스본 남서쪽 약 290km |
| 흔들림 시간 | 3분 30초~6분 | 도심에 폭 5m 균열 |
| 쓰나미 도착 | 지진 약 40분 뒤, 파도 세 번 | 290km ÷ 40분 ≈ 평균 시속 435km(단순 계산) |
| 쓰나미 높이 | 북아프리카 최대 20m, 콘월 3m | 약 66피트, 약 9.8피트 |
| 리스본 사망자 | 3만~4만 명 | 인구 약 20만 명의 15~20% |
| 전체 사망자 | 4만~5만 명(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 | 모로코만 1만 명 가능성 |
| 무너진 건물 | 리스본 건물의 85% | 왕실 도서관 7만 권도 소실 |
| 경제 피해 | 포르투갈 GDP의 32~48% | 2009년 연구 추정 |
| 재건안 발표 | 1755.12.4 | 지진 33일 뒤 |
바닷가에서 강한 지진을 느꼈거나 바닷물이 갑자기 크게 빠지면 경보를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높은 곳으로 대피하세요. 리스본에서는 지진을 피해 탁 트인 부두로 모였던 사람들이 40분 뒤 밀려온 쓰나미에 휩쓸렸어요. 첫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더 큰 파도가 이어질 수 있어요.
참고 자료
- Wikipedia, 1755 Lisbon earthquake
- 사진: O Terramoto de 1755 (1756-92) - João Glama (MNAA).png
- 사진: 1755 Lisbon Earthquake Location.png
- 사진: 1755 Lisbon earthquake.jpg
- 사진: Lisbon 1755 tsunami travel times.jpg
- 사진: Ex-voto a Nossa Senhora da Estrela (2.ª metade séc. XVIII) - João Glama Ströberle, atrib. (Museu de Lisboa, MC.PIN.0269).png
- 사진: Convento do Carmo ruins in Lisbon.jpg
- 사진: Retrato do Marquês de Pombal - escola portuguesa, séc. XVIII.png
- 사진: Gaiola pombalin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