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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야기

4,800km 밖에서는 대포 소리로 들렸다: 1883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 기록상 가장 큰 소리와 3만 6천 명을 삼킨 쓰나미

1883년 8월 27일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의 크라카타우섬이 폭발해 섬의 70% 이상이 사라지고 최소 3만 6,417명이 숨졌어요. 4,800km 밖까지 들린 폭발음, 지구를 세 바퀴 반 돈 기압파, 46m 쓰나미, 전 세계를 붉게 물들인 노을까지 기록을 따라가 봤어요.

크라카타우 화산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잿빛 분연 기둥을 그린 채색 석판화
1883년 크라카타우 분화를 그린 1888년 석판화. · Parker & Coward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1883년 8월 27일 오전, 인도양 한가운데 로드리게스섬 사람들은 멀리서 대포 쏘는 소리를 들었어요. 근처 배에서 쏜 포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소리는 4,800km 떨어진 인도네시아 순다 해협에서 온 것이었어요. 크라카타우라는 화산섬이 폭발하는 소리였어요. 이날 세 번째 폭발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소리로 남아 있어요.

폭발은 섬과 주변 군도의 70% 이상을 날려 버렸고, 섬은 무너져 칼데라가 됐어요. 화산폭발지수는 6으로 추정되고, 분화와 그로 인한 쓰나미로 최소 3만 6,417명이 숨진 것으로 기록돼요. 기록된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화산 사건 가운데 하나예요.

석 달 동안 이어진 전조와 첫 분화

크라카타우는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속한 순다 해협의 화산섬이었어요. 자바섬과 수마트라섬 사이에 있어요. 1883년 분화 전 몇 년 동안 주변의 지진 활동이 활발해서, 멀리 호주 노던 준주에서도 흔들림이 느껴졌고 1880년의 지진 하나는 등대를 망가뜨리기도 했어요.

1883년 5월 20일, 섬의 세 봉우리 가운데 가장 북쪽에 있는 페르부와탄에서 분화가 시작됐어요. 화산재는 약 6km 높이까지 올라갔고, 160km 떨어진 바타비아(지금의 자카르타)에서는 폭발음에 창문과 문이 흔들렸어요. 5월 26일 섬을 찾은 조사단은 섬 전체가 고운 흰 먼지로 덮여 있고, 페르부와탄에서 5~10분마다 폭발이 일어난다고 보고했어요. 지름 약 900m의 큰 분화구도 생겼어요.

크라카타우섬의 1883년 이전 모습과 남은 라카타, 페르부와탄, 다난 봉우리 위치를 표시한 지도
크라카타우 일대 지도. 베이지색은 1883년 8월 26일 이전의 섬이고, 남쪽 라카타 일부만 남았어요. 가운데 작은 섬은 뒤에 새로 솟은 아낙 크라카타우예요. · ChrisDHDR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6월 중순 다시 큰 폭발이 일어나 검은 구름이 닷새 동안 섬을 덮었어요. 6월 24일 동풍에 구름이 걷히자 크라카타우에서 화산재 기둥 두 개가 솟는 모습이 보였고, 페르부와탄의 꼭대기 봉우리는 사라져 있었어요. 주변 바다의 조수가 이상하게 높아져 정박한 배들은 사슬로 묶어야 했어요.

8월 초에는 네덜란드 측량 기술자 페르제나르 대위가 섬을 조사했어요. 큰 화산재 기둥 세 개와 적어도 열한 곳의 다른 분출구에서 나오는 증기를 확인했어요. 섬에 내려 보니 화산재가 약 50cm 두께로 쌓였고 식물은 모두 죽어 나무 그루터기만 남아 있었어요. 그는 더는 섬에 상륙하지 말라고 권고했어요.

바다 건너 섬 위로 하얀 화산재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오르는 흑백 사진
크라카타우 분화 장면. 네덜란드 KITLV 소장품으로, 1883년에 찍은 사진을 다시 찍은 것이에요.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8월 27일 오전 10시 2분, 가장 큰 폭발

8월 26일 오후 1시쯤 분화는 절정기에 들어섰어요. 오후 2시에는 검은 화산재 구름이 27km 높이까지 보였고, 10분마다 폭발음이 들렸어요. 오후 5시에는 자바섬 전체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5시 30분부터는 높이 1m 안팎의 파도가 자바와 수마트라 해안을 밤새 때렸어요. 화산에서 20km 안에 있던 배에는 지름 10cm에 이르는 뜨거운 부석이 떨어졌어요.

8월 27일에는 열한 번의 거대한 폭발이 이어졌어요. 오전 5시 30분 페르부와탄에서 첫 폭발이 일어나 텔록베통(지금의 반다르람풍) 쪽으로 쓰나미가 갔고, 6시 44분에는 다난에서 다시 폭발했어요. 세 번째이자 가장 큰 폭발은 오전 10시 2분에 일어났어요. 9시 58분이라고 적은 자료도 있어요. 10시 41분에는 산사태가 라카타 봉우리의 절반과 그 북쪽 섬 부분을 뜯어냈어요.

시각(8월 27일)일어난 일
오전 5시 30분페르부와탄에서 첫 폭발, 텔록베통 방향 쓰나미
오전 6시 44분다난에서 두 번째 폭발, 동서 양쪽으로 쓰나미
오전 10시 2분세 번째이자 가장 큰 폭발(9시 58분이라는 자료도 있음)
오전 10시 41분산사태로 라카타 봉우리 절반과 북쪽 섬 부분이 떨어져 나감
정오 무렵수마트라 케팀방 일대에 뜨거운 화산재 비, 약 1,000명 사망

이 폭발이 낸 에너지는 TNT 약 200메가톤(840페타줄)으로 추정돼요. 지금까지 터뜨린 가장 강한 수소폭탄인 차르 봄바의 약 네 배예요. 분출물은 시속 2,575km로 뿜어져 나왔어요. 다만 폭발과 쓰나미는 흔히 하나로 묶여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원리로 생겼을 가능성이 커요. 폭발은 가스를 머금은 마그마가 한꺼번에 뿜어진 것이고, 쓰나미는 그 분출물이 주변 바다로 쏟아져 내리면서 생긴 것으로 보여요.

4,800km까지 들린 소리와 지구를 세 바퀴 반 돈 기압파

세 번째 폭발음은 3,110km 떨어진 호주 퍼스와 4,800km 떨어진 로드리게스섬에서도 들렸어요. 로드리게스섬 사람들은 근처 배의 대포 소리라고 여겼어요. 화산에서 160km 떨어진 곳의 소리 크기는 180dB로 계산되고, 폭발 지점에서는 310dB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고 봐요. 약 64km 떨어진 수마트라 앞바다에 멈춰 있던 영국 배 노럼 캐슬호에서는 선원들의 고막이 터졌어요.

160km 떨어진 바타비아 가스 공장에서는 가스 탱크에 달린 압력계가 8.5kPa(2.5inHg) 넘게 치솟아 눈금 밖으로 벗어났고, 창문이 깨지고 벽에 금이 갔어요. 재미있는 점은 화산 바로 근처에서는 가장 큰 폭발음이 오히려 잘 들리지 않았거나 아예 들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유는 아직도 논쟁 중인데, 음파가 성층권 쪽으로 올라가 공중의 화산재 등에 반사돼 그 지역을 비껴갔을 수 있다는 설명이 있어요.

기압파는 시속 1,086km로 퍼져 나갔고, 세계 곳곳의 기압계에 기록됐어요. 몇몇 기압계는 닷새 동안 이 파동을 일곱 번 잡았어요. 화산에서 지구 반대편 지점으로 가는 파동을 네 번, 다시 화산 쪽으로 돌아오는 파동을 세 번 기록한 거예요. 기압파가 지구를 세 바퀴 반 돈 셈이에요. 영국 해협의 조위계에도 작은 파동이 찍혔는데, 쓰나미가 도착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어서 공기의 충격파가 만든 것으로 보여요.

높이 46m 쓰나미가 해안 마을을 지웠어요

가장 큰 쓰나미는 세 번째 폭발 때 생겼어요. 메락 마을은 높이 46m의 쓰나미에 사라졌고, 파도 높이는 수마트라 남부 해안에서 최대 24m, 자바 서부 해안에서 최대 42m에 이르렀어요. 약 80km 떨어진 낮은 섬들인 사우전드제도는 2m 바닷물에 잠겨 사람들이 나무 위로 올라가야 했어요. 쓰나미는 해안의 식물과 마을을 쓸어 냈어요.

텔록베통 근처에 정박해 있던 배 라우던호는 살아남았어요. 승객들은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빠르게 다가오자 선원들이 급히 돛을 올려 파도를 정면으로 맞았고, 배가 파도 꼭대기를 타고 넘은 뒤 바로 그 파도가 마을을 집어삼켰다고 증언했어요. 방금 전까지 텔록베통이 있던 자리에는 바다만 남았다고 했어요.

순다 해협 밖에서도 영향이 있었어요. 수마트라 남부에서는 파도가 4m에 이르렀고, 스리랑카에서도 한 명이 숨졌어요. 멀리 남아프리카 앞바다의 배들도 흔들렸고, 희생자들의 시신은 몇 달 동안 바다를 떠다녔어요. 쓰나미의 원인으로는 거대한 화쇄류가 바다로 들어가 몇 ㎦의 물질이 같은 부피의 바닷물을 밀어낸 것이 꼽혀요.

해안가 풀밭 위에 놓인 커다란 산호 덩어리 옆에 사람들이 서 있는 흑백 사진
1883년 크라카타우 분화 뒤 자바섬 안예르 해안으로 밀려 올라온 커다란 산호 덩어리. 1885년 무렵 사진이에요. · Woodbury & Page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바다 위를 건너온 화쇄류와 케팀방의 뜨거운 재

희생자의 약 10%는 화쇄류에 목숨을 잃었어요. 세 번째 폭발이 만든 화쇄류는 시속 100km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과열된 수증기를 방석처럼 깔고 바다 위를 최대 80km까지 건너갔어요. 순다 해협을 40km 건너 수마트라 남부에 닿은 화쇄류는 마을과 숲을 태웠고, 수마트라 남부에서 발견된 시신 가운데 2,000구는 불에 타 숨진 것으로 보여요.

8월 27일 정오 무렵에는 수마트라 케팀방(지금의 람풍주 칼리안다) 일대에 뜨거운 화산재가 비처럼 쏟아져 약 1,000명이 숨졌어요. 이 일은 '케팀방의 불타는 재'로 불려요. 이곳에 살던 베이어링크 부인은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고 마룻바닥 틈으로 재가 분수처럼 솟았으며, 숨을 쉴 수 없었다고 증언했어요. 밖으로 기어 나온 그녀는 피부가 벗겨진 것을 보고도 처음에는 화상인 줄 몰랐다고 했어요.

분화로 쌓인 테프라는 약 20㎦로 추정돼요. 화산재는 약 80km 높이까지 올라갔고, 2,500km 떨어진 곳까지 떨어졌어요. 바다에는 거대한 부석 들판이 몇 달 동안 떠다녔어요. 부석 뗏목에 실린 사람의 유해가 인도양을 건너 분화 뒤 1년 가까이 지나서까지 아프리카 동해안에 밀려왔다는 기록도 여럿 있어요.

구멍이 숭숭 뚫린 연한 회색 부석 덩어리를 가까이서 찍은 사진
1883년 크라카타우 분화에서 나온 유문석영안산암 부석. 케냐 해안의 타콰 해변에서 주운 것으로, 가장 넓은 곳의 폭이 8.6cm예요. · James St. John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섬의 3분의 2가 사라진 뒤의 순다 해협

공식 사망자 수는 3만 6,417명이에요. 세베시섬에 살던 3,000명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없었어요. 분화 2주 뒤 차링인 마을 자리를 본 사람은 수천 구의 사람과 동물 사체가 묻히지 못한 채 엉켜 있었다고 적었어요. 반텐 지역의 일부 땅은 끝내 사람이 다시 살지 않아 정글로 돌아갔고, 지금은 우중쿨론 국립공원이 됐어요.

크라카타우섬은 남쪽 3분의 1만 남고 거의 사라졌어요. 라카타 봉우리는 대부분 깎여 나가 높이 250m의 절벽을 남겼고, 북쪽 3분의 2에서는 다난의 조각인 작은 바위섬 하나만 남았어요. 분화 전 수심 100m였던 바다 분지는 분화 뒤 200~300m가 됐어요. 화산재가 쌓여 섬이 된 모래톱 두 곳은 나중에 바다에 다시 씻겨 사라졌어요.

북쪽 섬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였어요. 처음에는 폭발의 힘에 날아갔다고 봤지만, 쌓인 물질 대부분이 마그마에서 나온 것이고 칼데라가 1883년 분출물로 많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분화 끝 무렵 섬이 비어 버린 마그마 방으로 내려앉았다는 설명이 힘을 얻었어요. 그리고 1927년 12월 29일, 이 칼데라에서 새 화산섬 아낙 크라카타우, 곧 '크라카타우의 아이'가 처음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어요.

전 세계를 붉게 물들인 노을과 화산 겨울

분화는 성층권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황을 뿜어 올렸어요. 이 가스가 높은 바람을 타고 지구 전체로 퍼지면서 햇빛을 더 많이 반사했고, 다음 해 북반구 여름 평균기온은 0.4도 떨어졌어요. 1883년 7월부터 1884년 6월까지 남부 캘리포니아에 내린 기록적인 비(로스앤젤레스 970mm)를 크라카타우와 연결 짓는 견해도 있지만, 많은 과학자는 인과관계를 의심해요.

가장 눈에 띈 것은 하늘이었어요. 분화 뒤 몇 달 동안 전 세계에서 강렬한 노을이 나타났어요. 미국 뉴욕과 포킵시, 뉴헤이븐에서는 붉은 노을을 불이 난 것으로 알고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어요. 영국 화가 윌리엄 애스크로프트는 크라카타우에서 지구 반 바퀴 떨어진 런던에서 붉은 노을을 수천 장 스케치했어요. 몇 년 동안 달이 파랗게, 때로는 초록색으로 보였다는 보고도 있어요. 지름 약 1μm의 입자가 붉은빛을 강하게 흩뜨렸기 때문이에요.

주황색과 붉은색으로 물든 저녁 하늘을 시간대별로 그린 세 장의 그림
1883년 11월 26일 런던 첼시에서 본 황혼과 잔광을 오후 4시 40분, 5시, 5시 15분 무렵 순서로 그린 그림. 영국 왕립학회 크라카타우 위원회가 1888년에 펴낸 보고서에 실렸어요. · Krakatoa Committee of the Royal Society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당시 기상 관측자들은 이 현상을 '적도 연기 흐름'이라 부르며 지도에 그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제트기류로 알려진 흐름을 처음 알아본 사례예요. 2004년에는 한 천문학자가 에드바르 뭉크의 1893년 그림 「절규」의 붉은 하늘이 분화 뒤 노르웨이 하늘을 그대로 그린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어요. 또 전신 케이블 덕분에 이 분화 소식은 그 전의 어떤 큰 사건보다 빠르게 세계로 퍼졌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크라카타우 폭발

기압파 속도 시속 1,086km는 초속 약 302m예요. 이 속도로 퍼스(3,110km)까지는 약 2시간 52분, 로드리게스섬(4,800km)까지는 약 4시간 25분이 걸려요. 위키백과 문서가 먼 섬 사람들이 거의 네 시간 뒤에야 소리를 들었을 거라고 적은 것과 같은 규모예요. 오전 10시 2분에 난 소리가 로드리게스섬에는 오후 2시 반 무렵 닿은 셈이에요(두 곳의 시차는 따지지 않은 계산이에요).

지구 둘레를 약 4만km로 잡으면 세 바퀴 반은 14만km예요. 시속 1,086km로 이 거리를 가는 데는 약 129시간, 곧 5.4일이 걸려요. 기압계들이 닷새에 걸쳐 파동을 일곱 번 잡았다는 기록과 잘 맞아요. 분출물 속도 시속 2,575km는 초속 약 715m로, 소리 속도의 두 배가 넘어요. 바타비아 압력계의 8.5kPa는 표준 대기압(101.3kPa)의 약 8.4%예요.

항목기록환산·비교
폭발 에너지TNT 약 200메가톤(840PJ)차르 봄바의 약 4배
기압파 속도시속 1,086km초속 약 302m
분출물 속도시속 2,575km초속 약 715m
가장 높은 쓰나미46m(메락)약 151피트
160km 거리 소리180dB바타비아 압력계 8.5kPa 넘게 상승
사망자공식 3만 6,417명화쇄류 희생자가 약 10%
기온 변화북반구 여름 0.4도 하락분화 다음 해 평균
바닷가에서 강한 흔들림을 느끼거나 바닷물이 갑자기 빠지거나 차오르면 경보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높은 곳으로 대피하세요. 크라카타우처럼 화산 분화나 해안 산사태도 쓰나미를 일으킬 수 있고, 첫 파도보다 뒤따르는 파도가 더 클 수 있어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