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2년 5월 8일 아침, 카리브해 마르티니크섬 생피에르의 전신 기사는 포르드프랑스로 화산 상황을 보내고 있었어요. 특별한 변화는 없다는 보고였어요. 오전 7시 52분, 그는 '알레(Allez)'라고 쳐서 상대에게 회선을 넘겼고, 바로 다음 순간 전신선이 끊겼어요. 펠레산의 윗부분이 찢어지며 검은 구름이 옆으로 뿜어져 나온 거예요.
1,000도가 넘는 뜨거운 가스와 화산재 구름은 1분도 안 돼 도시 전체를 덮었어요. 당시 생피에르에 있던 약 2만 8,000명이 거의 모두 숨졌어요. 기록된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화산 분화 가운데 하나예요. 이 비극은 화산이 내는 가장 무서운 위험인 화쇄류를 처음으로 제대로 연구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해요.
'서인도의 파리' 생피에르와 잠들어 있던 펠레산
마르티니크는 카리브해 동쪽 소앤틸리스 화산호에 있는 섬이에요. 생피에르는 '서인도의 파리'라고 불렸고, 펠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져 있었어요. 펠레산은 1792년과 1851년에 비교적 작은 수증기 분화를 일으킨 적이 있었고, 19세기 중반부터 정상 근처 에탕 섹(마른 연못) 분화구에서 분기공 활동이 늘어나는 조짐도 있었어요. 원주민인 카리브족도 이 산이 오래전 분화한 화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1902년 4월 초, 산을 찾은 사람들은 정상 근처 분기공에서 유황 냄새 나는 증기가 나오는 것을 봤어요. 하지만 분기공은 예전에도 생겼다 사라지곤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어요. 4월 23일 산의 남쪽과 서쪽에 가벼운 화산재가 내리고 지진이 이어지면서 분화가 시작됐어요.

4월 23일부터 5월 7일까지, 2주 동안 쌓인 경고
4월 25일 정상의 에탕 섹 분화구에서 돌과 재를 담은 큰 구름이 솟았고, 26일에는 주변에 화산재가 뿌려졌어요. 그래도 당국은 걱정할 일이 없다고 봤어요. 4월 27일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원래 마른 분화구였던 에탕 섹에 지름 약 180m의 호수가 생긴 것을 발견했어요. 한쪽에는 높이 15m의 화산 쇄설물 원뿔이 쌓여 끓는 물을 호수로 흘려보내고 있었고, 땅속 깊은 곳에서 가마솥 물 끓는 소리가 들렸어요. 6.4km 떨어진 도시까지 유황 냄새가 퍼져 사람과 말이 괴로워했어요.
5월 2일 밤 11시 30분에는 큰 폭발음과 지진이 일어나며 짙은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았어요. 섬의 북쪽 절반이 화산재와 고운 부석으로 덮였고, 폭발은 5~6시간 간격으로 이어졌어요. 지역 신문 레 콜로니는 5월 4일로 잡혀 있던 펠레산 소풍을 무기한 미뤘어요. 재가 물과 먹이를 덮쳐 가축들이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갔어요.
5월 5일 오후 1시 무렵에는 바닷물이 갑자기 약 100m 물러났다가 다시 밀려와 도시 일부를 적셨어요. 에탕 섹 분화구 벽 한쪽이 무너지면서 끓는 물과 진흙이 뒤섞인 라하르가 블랑슈강을 따라 쏟아졌고, 게랭 제당 공장을 덮쳐 약 150명을 60~90m 깊이의 진흙 아래 묻었어요. 이 흐름은 바다에 부딪치며 쓰나미 세 번을 일으켰어요. 그날 밤에는 대기 교란으로 전력망이 멈춰 도시가 어둠에 잠겼어요.
5월 6일 아침 분연 일부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어요. 수증기 분화가 마그마가 지표로 올라온 마그마 분화로 바뀌었다는 뜻이었어요. 7일에는 화산 번개가 정상 주변을 수없이 내리쳤고 두 분화구가 밤새 주황빛으로 빛났어요. 시골 사람들이 피난처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어 인구는 몇천 명 더 늘었고, 신문들은 여전히 도시는 안전하다고 했어요. 이웃 세인트빈센트섬의 수프리에르 화산이 분화했다는 소식은 오히려 펠레산 속 압력이 빠져나간 신호로 받아들여졌어요.
모두가 안심한 것은 아니었어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 선장 마리나 레보페는 화주들의 항의와 체포 위협에도 설탕 화물을 절반만 실은 채 바크선 오르솔리나호를 몰고 항구를 떠났어요. 그는 펠레산은 모르지만 베수비오산이 오늘 아침 이 화산처럼 보였다면 나폴리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져요. 반면 많은 주민은 도시를 떠나도 된다는 허가를 받지 못했고, 총독 루이 무테 부부도 도시에 남았어요.
5월 8일 아침, 1분도 안 돼 도시를 덮은 화쇄류
5월 8일 목요일 아침, 산의 윗부분이 찢어지며 짙은 검은 구름이 옆으로 뿜어져 나왔어요. 두 번째 검은 구름은 위로 솟아 거대한 버섯구름이 됐고 반경 80km의 하늘을 어둡게 했어요. 땅을 타고 내려온 구름은 과열된 수증기와 화산 가스, 먼지로 이뤄진 화쇄 서지였어요. 겉은 검고 무거워 보였지만 안쪽은 뜨겁게 빛났고, 온도는 1,075도를 넘었어요.
구름의 속도는 자료마다 달라요. 분화 문서는 두 구름의 처음 속도를 시속 160km 이상으로 계산했다고 적고, 생존자 실바리스 문서는 처음 속도를 시속 670km 이상, 서쪽 사면을 내려온 속도를 시속 161km로 적어요. 구름이 생피에르에 닿은 시각도 전신이 끊긴 7시 52분과 오전 8시 2분으로 엇갈려요. 확실한 것은 구름이 1분도 안 돼 도시 전체를 덮었고, 불에 탈 수 있는 것을 모두 한꺼번에 태웠다는 점이에요. 뜨거운 재가 부서진 건물과 수많은 럼주 통에 옮겨붙어 거대한 화재 폭풍이 일어났어요.
항구의 배들도 피하지 못했어요. 앞바다에 있던 해저 케이블 수리선 그래플러호는 불이 붙어 가라앉았고 승무원 전원이 숨졌어요. 캐나다 화물 여객선 로라이마호도 불타는 잔해가 됐는데, 그 잔해는 지금도 생피에르 앞바다에 남아 있어요. 로라이마호에서는 승무원 28명과, 아홉 살 소녀와 그 보모 두 명을 뺀 승객 모두가 숨졌어요. 화쇄 구름이 휩쓴 면적은 약 21㎢였어요.
구름이 지나간 뒤에는 산 쪽으로 거센 바람이 불었고, 이어서 재가 섞인 진흙 비가 30분 동안 쏟아졌어요. 그 뒤 몇 시간 동안 도시와 연락이 완전히 끊겼고, 총독의 생사도 알 수 없어 누가 섬을 책임지고 있는지조차 아무도 몰랐어요. 마르티니크 주재 미국 영사 토머스 T. 프렌티스 부부도 이날 희생자 가운데 있었어요.

지하 독방에서 살아남은 죄수와 다른 생존자들
오랫동안 생피에르 생존자는 단 두 명이라는 이야기가 퍼져 있었어요.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 한 명과 도시 가장자리에 살던 레옹 콩페르레앙드르예요. 실제로는 폭발 구역 가장자리에서 빠져나온 사람이 더 있었어요. 다만 그들 대부분은 심한 화상을 입었고 일부는 나중에 숨졌으며, 이름과 사연이 기록되지 않았어요. 바다로 날려 간 선원 몇 명은 몇 시간 동안 잔해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고, 열 살 소녀 아비브라 다 이프릴은 배를 저어 동굴로 피신해 살아남았어요.
가장 유명한 생존자는 뤼제르 실바리스예요. 루이오귀스트 시파리스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어요. 1874년생 선원이자 노동자였던 그는 5월 2일 싸움 끝에 사람을 칼로 찔러 체포됐고, 분화 전날 밤에는 몰래 감옥을 빠져나가 시내 축제에 다녀온 일로 8일간 독방에 갇혔어요. 교수형을 기다리던 살인범이었다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감옥 기록을 보면 한 달 뒤면 형기가 끝날 예정이었어요.

그가 갇힌 독방은 돌벽으로 지어 일부가 땅속에 묻힌 1인용 방이었어요. 창문이 없었고, 화산 반대쪽을 향한 문의 좁은 창살로만 바람이 통했어요. 그는 아침 무렵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뜨거운 공기와 고운 재가 창살로 밀려 들어왔다고 했어요. 열기는 아주 짧았지만 손과 팔, 다리, 등에 깊은 화상을 남겼어요. 옷에는 불이 붙지 않았고, 그는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시지 않았어요. 그 뒤로는 창살 아래 고인 빗물과 이슬로 버텼어요.
5월 11일 이웃 마을 모른루주에서 온 구조대가 독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그를 꺼냈어요. 기자들은 처음에 그의 이야기를 의심했지만, 포르드프랑스 항소 법원은 그가 분화 전날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지질학자 알프레드 라크루아도 그의 생존 경위가 그럴듯하다고 봤어요. 사면을 받은 그는 1903년 미국으로 건너가 바넘 앤드 베일리 서커스에서 '종말의 날을 살아남은 사람'으로 소개되며 순회했어요. 인종 분리가 있던 이 쇼의 첫 흑인 주연이었어요. 그 뒤 파나마 운하 공사에서 일하다 1929년 파나마에서 숨졌어요.

콩페르레앙드르는 무서운 바람이 불고 땅이 흔들리며 하늘이 캄캄해졌다고 증언했어요. 겨우 방으로 들어갔지만 팔다리와 몸이 타는 듯했고, 함께 피신한 사람들 가운데 열 살쯤 된 소녀는 10분 만에 숨졌다고 했어요. 한 시간쯤 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지붕이 불타고 있었고, 그는 피투성이 다리로 6km 떨어진 퐁생드니까지 달려갔어요.
5월 20일과 8월 30일, 끝나지 않은 분화
5월 8일 정오 무렵 임시 총독은 순양함 쉬셰호를 보냈어요. 배는 오후 12시 30분쯤 불타는 도시 앞에 도착했지만, 열기 때문에 오후 3시 가까이 돼서야 선장이 상륙할 수 있었어요. 카페가 늘어선 중심가 광장의 나무는 한 그루도 서 있지 않았고, 뿌리째 뽑혀 그을린 줄기만 쓰러져 있었어요. 도시는 며칠 동안 탔고, 희생자가 너무 많아 매장 대신 화장해야 했어요.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5월 12일 구호를 지시하고 의회에 50만 달러를 요청했고, 의회는 우선 20만 달러를 의결했어요. 캐나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 교황청 등도 도움을 제안했어요.

분화는 끝나지 않았어요. 5월 20일 5월 8일과 비슷한 종류와 세기의 분화가 일어나 생피에르에 남아 있던 것을 마저 쓸어 냈고, 구호품을 나르던 구조대원과 기술자, 선원 2,000명이 숨졌어요. 8월 30일에는 화쇄류가 앞선 두 번보다 더 동쪽으로 뻗어 모른루주에서 적어도 800명, 아주파부이용에서 250명, 바스푸앵트 일부에서 25명, 모른카포에서 10명이 숨졌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펠레산의 마지막 인명 피해 분화예요.
1902년 10월부터는 에탕 섹 분화구 바닥에서 거대한 용암 첨탑이 자라났어요. '펠레의 바늘' 또는 '펠레의 탑'으로 불린 이 첨탑은 하루에 15m씩 자라 폭 약 100~150m, 높이 약 300m에 이르렀고, 부피는 이집트 대피라미드와 비슷했어요. 다섯 달 동안 자란 첨탑은 불안정해져 1903년 3월 무너져 돌무더기가 됐어요. 긴 분화는 1905년 10월 5일에야 끝났어요.

'불타는 구름'이 현대 화산학을 열었어요
펠레산 재난의 원인을 파고든 연구는 현대 화산학의 출발점이 됐어요. 화산이 내는 가장 치명적인 위험인 화쇄류와 화쇄 서지가 이때 처음 정의되고 분석됐거든요. 지질학자 알프레드 라크루아는 이 현상을 처음 기술하며 '누에 아르당트(nuée ardente)', 곧 '불타는 구름'이라고 불렀어요. 앤절로 하일프린도 펠레산을 연구한 사람 가운데 하나예요. 지금도 이런 형태의 분화를 '펠레식 분화'라고 불러요.
이 재난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통신 수단을 타고 빠르게 세계에 알려졌어요. 덕분에 활화산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가 대중과 각국 정부의 관심사가 됐어요. 같은 해에는 이 분화를 다룬 조르주 멜리에스의 프랑스 영화 「펠레산의 분화」도 나왔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펠레산 폭발
화쇄 서지 온도 1,075도는 화씨로 바꾸면 1,967도예요. 섭씨에 1.8을 곱하고 32를 더하면 돼요. 속도를 거리로 바꿔 보면 왜 아무도 피하지 못했는지 보여요. 정상에서 약 10km 떨어진 생피에르까지 시속 160km로 오면 약 3분 45초, 시속 670km로 오면 약 54초가 걸려요. 사람이 달려서 피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어요.
날짜로 보면 4월 23일 첫 분화부터 5월 8일 대폭발까지 15일 동안 경고가 이어졌어요. 분화 전체는 1902년 4월 23일부터 1905년 10월 5일까지 1,261일, 곧 3년 5개월 넘게 계속됐어요. 생피에르 사망자 약 2만 8,000명에 5월 20일 2,000명, 8월 30일 1,085명 이상을 더하면 1902년 한 해에만 3만 1,000명 넘게 숨진 셈이에요.
| 항목 | 기록 | 환산·비교 |
|---|---|---|
| 첫 분화~대폭발 | 1902.4.23~5.8 | 15일 |
| 화쇄 서지 온도 | 1,075℃ 이상 | 화씨 1,967도 이상 |
| 구름 속도 | 시속 160km 이상(처음 속도 670km 이상이라는 자료도 있음) | 약 10km를 3분 45초~54초 |
| 황폐해진 면적 | 약 21㎢ | 도시 전체가 1분 안에 덮임 |
| 5월 8일 사망자 | 약 2만 8,000명 | 생존자는 손에 꼽을 정도 |
| 5월 20일 사망자 | 2,000명 | 구조대원·기술자·선원 |
| 8월 30일 사망자 | 1,085명 이상 | 모른루주 800명 이상 등 네 지역 합계 |
| 용암 첨탑 | 높이 약 300m, 하루 15m 성장 | 부피는 대피라미드와 비슷 |
| 분화 전체 기간 | 1902.4.23~1905.10.5 | 1,261일 |
화산 주변에서 당국이 대피를 권고하면 분화가 잠잠해 보여도 바로 따르세요. 화쇄류는 시속 100km를 훌쩍 넘는 속도로 내려오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피하기에는 늦어요. 펠레산에서도 저녁에 진동이 잦아든 듯 보인 다음 날 아침 가장 큰 폭발이 일어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