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7월 17일 금요일 저녁,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하얏트 리젠시 호텔 로비에는 약 1,600명이 모여 있었어요. 퇴근 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티 댄스' 행사가 열리고 있었거든요. 오후 7시 5분 무렵, 로비 위를 가로지르던 4층 공중 통로가 몇 인치 내려앉더니 잠깐 멈췄다가 그대로 아래 2층 통로 위로 떨어졌어요. 두 통로는 한꺼번에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어요.
이 사고로 114명이 숨지고 216명이 다쳤어요. 고의가 아닌 구조물 붕괴로는 120여 년 전 펨버턴 방직공장 붕괴 이후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사고였고, 20년 뒤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기 전까지 미국에서 두 번째로 치명적인 구조물 붕괴로 남았어요. 원인을 따라가 보면 거대한 계산 실수가 아니라, 막대 하나를 둘로 나누자는 작은 설계 변경과 아무도 다시 계산하지 않은 확인 과정이 나와요.
서둘러 지은 40층 호텔과 로비 위의 공중 통로
하얏트 리젠시 캔자스시티는 1978년 5월에 공사를 시작한 40층 호텔이에요. 지역 신문 캔자스시티 스타는 당시 미국 분위기를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두 자릿수 금리 때문에 건설사들이 계약을 따내고 공사를 빨리 끝내라는 압박을 받던 시기로 묘사했어요. 이 호텔도 공기를 앞당긴 '패스트트랙' 방식으로 지어졌고, 공사 중 지붕 약 250㎡(2,700제곱피트)가 무너지는 등 지연과 사고가 여럿 있었어요.
같은 시기 미국 곳곳에서 큰 건물이 잇따라 무너졌어요. 1978년 하트퍼드 시빅 센터 지붕, 1979년 바로 같은 캔자스시티의 켐퍼 아레나 지붕이 붕괴했어요. 신문은 이를 두고 전국의 주목받는 구조물들이 놀라운 속도로 무너지고 있었다고 적었어요. 호텔은 1980년 7월 1일 공식 개장했어요.
이 호텔의 자랑은 여러 층 높이로 뚫린 로비였어요. 천장에 매달린 공중 통로가 로비를 가로질러 북쪽 건물과 남쪽 건물의 2층, 3층, 4층을 이었어요. 통로는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로 만들었고 길이는 약 37m(120피트), 무게는 약 2만 9,000kg(6만 4,000파운드)이었어요. 4층 통로는 2층 통로 바로 위에 겹쳐 있었고, 3층 통로는 몇 미터 옆으로 비켜 있었어요.

1981년 7월 17일 오후 7시 5분, 티 댄스 중에 일어난 일
업무 지구에 있는 하얏트 리젠시 호텔들은 금요일 퇴근 시간에 높은 로비에서 티 댄스를 여는 일이 많았어요. 사고 당일 2층 통로에는 약 40명, 4층 통로에는 16~20명이 서 있었고 3층 통로에도 사람이 더 있었어요. 손님들은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큰 균열음을 들었다고 했어요. 그 직후 4층 통로가 몇 인치 내려앉아 잠깐 멈췄다가 완전히 떨어졌어요.
호텔 꼭대기 42층 회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손님은 폭발이 일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어요. 4층 통로가 2층 통로를 덮치면서 두 통로가 함께 로비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아래에서 춤추거나 구경하던 사람들이 강철과 콘크리트, 유리 더미에 깔렸어요. 3층 통로는 옆으로 비켜 있어서 함께 무너지지 않았어요.

크레인을 창문으로 밀어 넣은 14시간의 구조 작업
구조 작업은 캔자스시티 응급의료 책임자 조지프 웨커를의 지휘로 14시간 동안 이어졌어요. 생존자들은 몇 톤에 이르는 강철과 콘크리트 아래 깔려 있었는데, 소방서 잭으로는 잔해를 들어 올릴 수 없었어요. 도움을 요청하자 건설사와 자재 업체 사람들이 잭, 손전등, 압축기, 착암기, 콘크리트 절단기, 발전기를 들고 달려왔어요. 크레인까지 가져와 로비 창문으로 붐을 밀어 넣고 잔해를 들어 올렸어요.
당시 부소방서장 아넷 윌리엄스는 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다 가져가라고 했고, 장비를 다 돌려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도 정산을 요구하거나 청구서를 보낸 적이 없다고 회상했어요. 1층 전시장은 임시 안치소가 됐고, 호텔 진입로와 잔디밭은 부상자를 분류하는 곳으로 쓰였어요. 걸을 수 있는 생존자는 구조를 돕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가라는 안내를 받았고, 혈액원에는 헌혈하려는 사람 수백 명이 줄을 섰어요.
현장 상황은 나빴어요. 먼지가 자욱했고, 화재를 막으려고 전기를 끊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터진 스프링클러에서 쏟아진 물이 로비를 채워 갇힌 사람들이 물에 빠질 위험까지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구조된 마크 윌리엄스는 아래쪽 통로에 9시간 넘게 깔려 있었고, 두 다리가 탈구된 채 물이 잠기기 전까지 거의 익사할 뻔했어요. 사상자는 사망 114명, 부상 216명이었고 부상자 가운데 29명은 잔해 속에서 구조됐어요.
막대 한 줄을 두 줄로 바꾸자 너트에 걸린 하중이 두 배가 됐어요
두 통로는 지름 약 32mm(1.25인치)의 강철 매달음 막대로 천장에 매달려 있었어요. 4층 통로 바닥은 가로보 세 개 위에 놓였고, 가로보는 너트로 막대에 고정됐어요. 가로보는 폭 약 200mm(8인치)의 C형강 두 개를 길이 방향으로 용접해 붙인 상자형 보였고, 안쪽은 비어 있었어요.
구조 설계 회사 잭 D. 길럼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원래 설계에서는 막대 세 쌍이 천장에서 2층 통로까지 한 줄로 내려왔어요. 막대가 4층 통로의 보를 그대로 뚫고 지나가고, 막대 중간의 너트가 4층 통로를, 맨 아래 너트가 2층 통로를 받치는 방식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4층 보는 4층 통로 무게만 지고, 2층 통로 무게는 막대가 통째로 천장까지 전달해요. 다만 이 원래 설계조차 캔자스시티 건축 기준이 요구하는 최소 하중의 60%만 버틸 수 있었어요.
막대를 만든 헤이븐스 스틸은 문제를 하나 짚었어요. 중간에 너트를 끼우려면 4층 아래로 막대 전체에 나사산을 내야 하는데, 4층 구조물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나사산이 상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막대를 두 벌로 나누자고 제안했어요. 한 벌은 천장에서 4층 통로까지, 다른 한 벌은 4층 통로에서 2층 통로까지 서로 엇갈리게 다는 방식이었어요.

이 변경이 치명적이었어요. 바뀐 설계에서는 2층 통로가 4층 통로의 보에 매달리게 되니, 4층 보가 4층과 2층 두 통로의 무게를 모두 져야 했어요. 위 그림처럼 4층 보 아래 너트 하나가 받는 힘이 P에서 2P로 늘어난 거예요. 그런데 그 보는 이렇게 걸린 하중의 30%만 감당할 수 있는 강도였어요.
약점은 하나 더 있었어요. 원래 설계와 바뀐 설계 모두 볼트가 C형강 두 개를 이은 용접 부위를 바로 관통했는데, 그곳이 상자형 보에서 가장 약한 지점이었어요. 사고 때 상자형 보는 용접선을 따라 갈라졌고, 그 틈으로 너트가 미끄러져 빠졌어요. 위쪽 통로가 처음에 몇 인치 내려앉았다가 멈췄다는 증언과 맞아떨어져요. 너트가 잠시 보의 윗면에 걸렸다가, 그 윗면마저 버티지 못하자 통로 전체가 떨어진 연쇄 파괴였어요.

아무도 다시 계산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론
캔자스시티 스타는 건축공학자 웨인 G. 리슈카와 공학 회사 심프슨 검퍼츠 앤드 헤거에 조사를 맡겼고, 리슈카가 통로 설계가 바뀐 사실을 찾아냈어요. 며칠 안에 리하이 대학교 실험실이 상자형 보 시험을 시작했고, 미주리주 면허 위원회와 주 검찰총장, 잭슨 카운티도 몇 년에 걸쳐 조사했어요. 잔해를 창고에서 꺼내 조사하는 데도 법원 명령이 필요했어요.
미국 국립표준국(NBS) 조사 책임자 에드워드 프랭은 최종 보고서에서 설계 결함으로 인한 구조적 과부하를 원인으로 들었고, 통로가 자기 무게를 버틸 능력조차 겨우 있는 수준이었다고 적었어요. 그는 그날 밤 실린 사람 무게의 3분의 1만으로도 통로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결론지었어요. 공사 전체를 두고는 모두가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했다고 평가했어요.
조사관들이 본 근본 원인은 설계사와 제작사 사이의 소통 실패였어요. 길럼 측이 보낸 도면은 예비 스케치였는데, 헤이븐스 스틸은 이를 확정 도면으로 받아들였어요. 길럼 측 담당 엔지니어는 헤이븐스 스틸의 변경안을 전화 통화로 승인했고, 4층 보의 하중이 두 배가 된다는 사실을 드러냈을 계산도, 스케치 검토도 하지 않았어요. 보고서와 법정 증언은 저마다 다른 누군가가 계산하고 보강을 확인했으리라 믿었지만 그 근거가 서류 어디에도 없었다고 지적했어요. 현장 노동자들은 보가 휘는 것을 보고도 보고하지 않고 무거운 손수레를 통로 대신 다른 길로 돌려 다녔어요.

면허 취소, 300건 넘는 소송, 그리고 엔지니어의 고백
미주리주 건축사·기술사·측량사 위원회는 최종 도면을 승인한 길럼 회사의 엔지니어들에게 중과실과 비위, 직업상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어요. 처음 기소된 형사 혐의에서는 모두 무죄가 나왔지만, 회사는 미주리·캔자스·텍사스의 엔지니어링 면허와 미국토목학회(ASCE) 회원 자격을 잃었어요.
사고 뒤 몇 달 동안 300건이 넘는 소송이 제기됐고, 청구액을 모두 더하면 30억 달러였어요. 실제로 피해자와 가족에게 지급된 금액은 적어도 1억 4,000만 달러였고, 가장 큰 배상은 평생 전일 간병이 필요해진 한 피해자에게 돌아간 약 1,200만 달러였어요. 그날 밤 호텔에 있던 약 1,600명에게는 조건 없이 1,000달러씩 제안됐고 1,300명이 기한 안에 받아들였어요. 호텔 소유사와 모회사 홀마크 카드, 건축가, 엔지니어, 시공사까지 모든 피고는 법적 책임을 부인했어요.
구조 책임자였던 잭 D. 길럼(1928~2012)은 시간이 지나 사고와 설계 결함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인정했어요. 그는 제대로 확인했다면 공대 1학년도 알아챌 결함이었다고 돌아봤어요. 1년 365일 그날을 떠올린다던 그는 여러 해 동안 공학 학회에서 강연하며,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해 엔지니어들을 단단히 겁먹게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공학 윤리 수업의 교과서가 된 뒤의 변화
호텔 로비는 다시 설계됐어요. 2층 통로는 기둥으로 받치는 방식으로 바꿨고, 나머지 통로는 영구히 없앴으며 지붕도 보강했어요. 호텔은 1981년 10월 1일 다시 문을 열었고, 같은 날 엔지니어와 건축가 위원회는 건물에 다른 구조 안전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어요. 다른 하얏트 호텔들은 곧 티 댄스를 열지 않게 됐어요.
가장 큰 변화는 제도에 남았어요. 미국토목학회는 제작사가 그린 시공 상세도(숍 드로잉)를 검토할 최종 책임이 구조 엔지니어에게 있다는 명확한 방침을 세웠고, 이 방침은 법정에서도 무게를 가져요. 캔자스시티 건축 인허가 부서는 독립 부서가 되어 인력을 두 배로 늘렸고, 검토하는 건물마다 엔지니어 한 명이 모든 측면을 맡게 했어요. 이 사고는 지금도 공학 윤리 수업과 응급 관리 교육에서 작은 개인의 책임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 주는 사례로 쓰여요.
캔자스시티 스타와 자매지 캔자스시티 타임스는 16개월에 걸친 탐사 보도로 1982년 퓰리처상을 받았어요. 이 보도는 호텔 소유사의 모회사인 홀마크 카드 경영진을 포함한 지역 사회와 신문사 사이에 갈등을 낳기도 했어요.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는 2015년 11월 12일 호텔 길 건너 호스피털 힐 공원에 세워졌어요. 위 대표 사진을 찍은 바로 그 공원이에요.
숫자로 다시 보는 하얏트 리젠시 붕괴
통로 하나의 무게 6만 4,000파운드는 1파운드를 0.4536kg으로 바꾸면 약 2만 9,030kg, 곧 29톤이에요. 길이 120피트는 약 36.6m, 막대 지름 1.25인치는 31.75mm예요. 공사 중 무너진 지붕 2,700제곱피트는 약 250.8㎡로 76평쯤 돼요.
하중 이야기를 숫자로 풀면 이래요. 4층 통로 무게를 P라고 하면 원래 설계에서 4층 보의 너트는 P만 받아요. 바뀐 설계에서는 2층 통로(역시 약 P)가 4층 보에 매달리니 너트가 2P를 받아요. 그런데 보는 그 하중의 30%만 버틸 강도였으니, 필요한 강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 셈이에요. 프랭이 사람 무게의 3분의 1만으로도 무너졌을 것이라고 본 것도 이 부족한 여유를 보여 줘요.
날짜도 따져 볼 만해요. 1980년 7월 1일 개장해서 1981년 7월 17일 붕괴하기까지 381일, 곧 1년 하고 16일이 걸렸어요. 붕괴 뒤 재개장까지는 76일이었어요. 소송 청구액 30억 달러 가운데 실제 지급액 1억 4,000만 달러는 약 4.7%예요. 1,000달러 제안을 받아들인 1,300명은 약 1,600명 가운데 81% 정도이고, 이 금액만 합쳐도 130만 달러예요.
| 항목 | 기록 | 환산·비교 |
|---|---|---|
| 통로 길이 | 약 120피트 | 약 36.6m |
| 통로 무게 | 약 6만 4,000파운드 | 약 2만 9,030kg |
| 매달음 막대 지름 | 1.25인치 | 31.75mm |
| 원래 설계 강도 | 건축 기준 최소 하중의 60% | 처음부터 기준 미달 |
| 바뀐 설계 4층 보 | 걸린 하중의 30%만 감당 | 너트 하중 P → 2P |
| 구조 작업 시간 | 14시간 | 마지막 생존자 9시간 넘게 깔림 |
| 사상자 | 사망 114명, 부상 216명 | 부상자 중 29명 잔해 속 구조 |
| 개장~붕괴 | 1980.7.1~1981.7.17 | 381일 |
| 소송 | 300건 넘게, 청구 30억 달러 | 실제 지급 1억 4,000만 달러 이상(약 4.7%) |
건물 안 발코니나 통로, 계단이 눈에 띄게 처지거나 금이 가고 이상한 소리가 나면 그 위에 머물지 말고 바로 벗어난 뒤 관리자에게 알리세요. 하얏트 리젠시에서도 공사 중 보가 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지만 보고되지 않았어요.
참고 자료
- Wikipedia, Hyatt Regency walkway collapse
- Wikipedia, Hy-Vee Arena (옛 켐퍼 아레나)
- 사진: SheratonCrownCenter.jpg
- 사진: Hyatt Regency Crown Center Kansas City MO.jpg
- 사진: Hyatt Regency collapse floor view.PNG
- 사진: HRWalkway.svg
- 사진: Hyatt Regency collapse support.PNG
- 사진: Kansas City Hyatt Regency Walkways Collapse 11.gi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