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계산기
← 블로그로 돌아가기

사건사고이야기

정원 376명인 배에 2,127명을 태웠다: 1865년 술타나호 보일러 폭발,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해난 사고

1865년 4월 27일 새벽, 남북전쟁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북군 병사들을 가득 태운 증기선 술타나호가 미시시피강에서 보일러 폭발로 불타 가라앉았어요. 정원의 5배가 넘는 2,127명이 타고 있었고 약 1,164명이 숨졌어요. 뇌물과 엉터리 수리, 책임지지 않은 사람들까지 기록으로 정리했어요.

굴뚝 두 개에서 연기를 내뿜는 대형 외륜 증기선의 모든 갑판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는 흑백 사진
폭발 하루 전인 1865년 4월 26일 아칸소주 헬레나에서 찍힌 술타나호. 사진가 토머스 뱅크스가 사람들로 가득 찬 배를 찍었어요. · Thomas W. Bankes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해난 사고는 바다가 아니라 강에서 일어났어요. 1865년 4월 27일 새벽 2시쯤,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오르던 증기선 술타나호의 보일러가 터졌어요. 배에는 남부연합 포로수용소에서 막 풀려나 집으로 돌아가던 북군 병사들이 갑판마다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어요. 승객 정원은 376명이었는데 이날 배에 탄 사람은 2,127명이었어요. 약 1,164명이 숨졌지만, 이 사고는 같은 시기의 큰 뉴스에 가려 금세 잊혔어요.

목화를 실어 나르던 외륜 증기선 술타나호

술타나호는 1863년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존 리더베리 조선소에서 나무로 지은 배예요. 1863년 1월 3일 진수됐고, 같은 이름을 단 다섯 번째 증기선이었어요. 원래 미시시피강 하류의 목화 운송을 위해 만들었고, 2년 동안 세인트루이스와 뉴올리언스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남북전쟁 중에는 군대 수송에도 자주 쓰였어요.

배의 길이는 260피트(79m), 폭은 42피트(13m)였어요. 배 양옆의 외륜 두 개를 보일러 네 개가 돌렸어요. 이 보일러는 1848년에 나온 연관식 보일러로, 같은 연료로 일반 보일러보다 두 배 많은 증기를 만들 수 있었어요. 보일러 하나는 길이 18피트(5.5m)에 지름 46~48인치였고, 안에 지름 5인치짜리 연관 24개가 길게 지나갔어요.

힘이 센 만큼 위험도 컸어요. 연관 주변의 물 높이를 늘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고, 연관 사이 좁은 틈은 진흙이 많은 강물 때문에 쉽게 막히면서도 청소하기가 어려웠어요. 물이 부족하면 쇠판의 한 부분만 과열되는 '열점'이 생겨 금속이 약해지고 폭발 위험이 크게 높아졌어요. 게다가 당시 증기선은 대부분 기름 성분의 페인트와 니스를 칠한 가벼운 나무로 지어서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었어요.

링컨 암살 소식, 그리고 포로 한 명당 2.75달러의 뇌물 거래

1865년 4월 13일, 제임스 캐스 메이슨 선장이 지휘하는 술타나호가 세인트루이스를 떠나 뉴올리언스로 향했어요. 4월 15일 아침 일리노이주 카이로에 정박해 있을 때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이 들어왔어요. 남부와의 전신이 거의 끊겨 있었기 때문에 메이슨 선장은 카이로 신문을 한 아름 안고 남쪽으로 내려가며 소식을 전했어요.

미시시피주 빅스버그에 닿았을 때 그곳 수송 책임자 루벤 벤턴 해치 대위가 메이슨에게 제안을 했어요. 앨라배마주 카하바와 조지아주 앤더슨빌의 남부연합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북군 병사 수천 명이 빅스버그 외곽 임시 수용소에서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정부는 이들을 북쪽으로 실어 가는 선장에게 사병 한 명당 2.75달러, 장교 한 명당 8달러를 주기로 했어요. 해치는 뒷돈을 주면 약 1,000명을 꽉 채워 태우게 해 주겠다고 했고, 돈이 필요했던 메이슨은 곧바로 받아들였어요.

천막 앞 탁자 주위에 군복 입은 장교들과 남자들이 모여 선 흑백 사진이 위에 있고 아래에 영어 설명문과 증기선 사진이 실린 인쇄물
'마지막 포로 교환, 빅스버그 포마일 브리지의 캠프 피스크, 1865년 4월'. 포로 교환을 위해 세운 캠프 피스크의 모습을 1911년에 인쇄한 자료예요. ·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며칠 걸릴 보일러 수리를 하루 만에 덧댄 판으로 끝냈다

술타나호는 빅스버그에서 뉴올리언스로 내려가며 링컨 암살 소식을 계속 전했어요. 4월 21일 객실·갑판 승객 약 70명과 가축 약간, 선원 85명을 태우고 뉴올리언스를 떠났어요. 그런데 빅스버그를 약 10시간 남겨 둔 곳에서 보일러 하나에 물이 새기 시작했어요. 압력을 낮춘 채 겨우 빅스버그에 들어온 배는 보일러를 고치고 약속된 포로들을 태워야 했어요.

불려 온 기술자는 터진 이음매를 잘라 내고 새 판으로 바꾸려 했어요. 하지만 수석 기관사 네이선 윈트린저는 그렇게 하면 며칠이 걸리고, 그사이 포로들이 다른 배로 떠나 버릴 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는 기술자를 설득해 임시 수리를 맡겼어요. 부풀어 오른 보일러 판을 망치로 두드려 펴고, 그 위에 원래보다 얇은 판을 리벳으로 덧붙이는 방식이었어요. 2~3일 걸릴 일이 하루 만에 끝났고, 그동안 포로들이 배에 올랐어요.

정원 376명인 배에 2,127명, 갑판이 휘어 기둥을 받쳤다

해치는 1,000명 정도를 약속했지만 수용소 명부가 뒤엉키고 다른 선장들이 뇌물을 썼다는 의심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승선을 맡은 조지 오거스터스 윌리엄스 대위는 인원이 1,500명이 안 될 거라 믿고 수용소의 모든 병사를 술타나호에 태웠어요. 4월 24일 밤 빅스버그를 떠날 때 배에는 풀려난 포로 1,950명, 제58 오하이오 보병연대 경비병 22명, 요금을 낸 객실 승객 70명, 선원 85명, 모두 2,127명이 타고 있었어요. 법정 승객 정원은 376명이었어요.

포로 상당수는 수용소 생활과 병으로 몸이 약해져 있었어요. 객실은 이미 민간인 승객이 차지해서 병사들은 빈자리라면 어디든 들어찼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 갑판 몇 군데가 삐걱거리며 처지기 시작했고, 굵은 나무 기둥을 대서 받쳐야 했어요.

술타나호는 이틀 동안 강 역사상 손꼽히는 봄 홍수를 거슬러 올라갔어요. 곳곳에서 강물이 둑을 넘어 폭 3마일(4.8km)까지 퍼졌고, 강가 나무는 꼭대기만 물 위로 보였어요. 4월 26일 아칸소주 헬레나에 들렀을 때 사진가 토머스 뱅크스가 사람으로 가득 찬 배를 찍었어요. 이 글의 대표 사진이 그것이에요. 저녁 7시쯤 테네시주 멤피스에 도착한 배는 화물칸의 설탕 120톤(109t)을 내렸고, 약 200명이 멤피스에 남았어요. 자정 무렵 출발한 배는 석탄 바지선에서 석탄을 싣고 새벽 1시쯤 다시 북쪽으로 향했어요.

새벽 2시 멤피스 북쪽 11km, 보일러 세 개가 연달아 터졌다

4월 27일 새벽 2시쯤, 멤피스에서 북쪽으로 약 7마일(11km) 올라간 곳에서 보일러가 갑자기 터졌어요. 먼저 하나가 폭발했고, 거의 동시에 두 개가 더 터졌어요. 증기는 보일러 위쪽 뒷부분에서 45도 각도로 솟구쳐 사람이 가득 찬 위 갑판들을 꿰뚫고 조타실을 완전히 부숴 버렸어요. 배를 몰 사람이 없어진 술타나호는 불타는 채로 떠내려가기 시작했어요.

폭발로 갑판에 있던 사람들이 강물로 날아갔고, 선체에는 25~30피트(7.6~9.1m) 크기의 구멍이 뚫렸어요. 굴뚝 두 개도 쓰러졌어요. 오른쪽 굴뚝은 뒤로 넘어가 폭발 구멍에 빠졌고, 왼쪽 굴뚝은 앞으로 쓰러지며 배의 종을 치고 사람이 몰려 있던 위 갑판 앞부분을 덮쳤어요. 위 갑판 앞부분이 가운데 갑판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많은 사람이 깔렸어요. 중앙 계단 입구의 튼튼한 난간이 버팀목 역할을 해 그 주변 사람들은 잔해 아래로 기어 계단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어요.

뒤쪽에서는 무너진 갑판이 비탈처럼 기울어 드러난 화실로 이어졌어요. 부서진 나무에 불이 붙었고, 남은 상부 구조물 전체가 거대한 불덩이가 됐어요. 사람들은 물로 뛰어들었지만 수용소 생활로 약해진 몸은 금세 힘이 빠졌어요. 서로 붙잡고 버티다 여럿이 한꺼번에 가라앉았어요.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증기선 앞 강물에 수많은 사람이 떠 있는 모습을 새긴 흑백 목판화. 신문 지면 위아래에 영어 기사가 보여요
'증기선 술타나호의 폭발, 1865년 4월 28일'이라는 제목의 1865년 목판화. 판화 제목의 날짜는 실제 사고일인 4월 27일과 하루 차이가 나요. ·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얼음 같은 봄 강물 속 구조, 몇 달 동안 떠오른 시신

폭발 30분 뒤인 새벽 2시 30분쯤, 수리를 마치고 첫 운항으로 강을 내려오던 증기선 보스토나호가 도착해 수십 명을 건졌어요. 같은 시각 11km를 떠내려간 사람들이 멤피스 부두 앞을 지나며 도움을 외쳤고, 정박해 있던 증기선과 해군 군함의 선원들이 이들을 구했어요. 실버스프레이호, 제니린드호, 포카혼타스호와 해군 장갑함 에식스호, 포함 타일러호도 구조에 나섰어요.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녹은 눈이 섞인 차가운 봄 강물에 뛰어들거나 불타는 배와 함께 있어야 했어요. 많은 사람이 익사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숨졌어요. 아칸소 쪽 강가에서 반쯤 잠긴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구조된 사람도 있었어요. 술타나호의 잔해는 약 6마일(10km)을 떠내려가 강 서쪽 기슭에 닿았고, 폭발 약 5시간 뒤인 아침 7시쯤 물에 닿을 만큼 타 버린 뒤 가라앉았어요. 시신은 몇 달 동안 하류에서 발견됐고, 멀리 빅스버그에서 나온 경우도 있었어요. 끝내 찾지 못한 시신도 많았어요. 메이슨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 간부 대부분도 숨졌어요.

북군은 1862년 멤피스를 점령해 보급·요양 도시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시설이 갖춰져 있었어요. 생존자 약 760명이 이곳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4월 28일부터 6월 28일 사이 숨진 사람은 31명이었어요. 술타나호를 타고 오다 멤피스에서 내렸던 시카고 오페라 극단은 자선 공연을 열었고, 에식스호 승무원들은 1,000달러를 모았어요.

1,100명에서 1,547명까지, 사망자 수가 다른 이유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지금도 알 수 없어요. 가장 최근 연구는 1,164명으로 봐요. 사고 한 달도 안 된 1865년 5월 19일 포로 담당 총감 윌리엄 호프먼 준장은 1,238명이라고 보고했고, 1867년 2월 육군 군법국은 1,100명, 1880년 의회와 전쟁부는 1,259명으로 발표했어요. 미국 세관의 공식 집계는 1,547명이었어요. 생존자도 1880년 전쟁부는 931명으로 셌지만 최근 연구는 963명으로 봐요. 탑승자 2,127명에서 생존자 963명을 빼면 1,164명이 나와요.

테네시주 문장이 위에 있는 흰색 금속 안내판에 술타나 참사라는 제목과 영어 설명이 검은 글씨로 쓰여 있고 뒤로 강이 보여요
멤피스 미시시피강 동쪽 강변, 테네시 웰컴센터 근처에 세워진 술타나 참사 안내판. 2017년에 찍은 사진이에요. 안내판에는 1,547명 넘게 숨지고 2,300명 넘게 타고 있었다고 적혀 있어요. · Pete unseth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그래서 기념물마다 숫자가 달라요. 멤피스의 테네시 역사위원회 안내판은 세관 집계인 1,547명을 쓰고, 아칸소주 매리언의 안내판은 약 1,500명이 숨졌다고 적었어요. 숨진 병사들은 처음에 멤피스 남쪽 포트 피커링 묘지에 묻혔다가, 1년 뒤 멤피스 국립묘지가 생기면서 그곳으로 옮겨졌어요. 민간인 희생자 세 명은 멤피스 엘름우드 묘지에 묻혀 있어요.

기울 때마다 끓어오른 보일러, 공식 원인과 2015년 분석

공식 조사는 보일러의 물 높이 관리를 잘못한 것을 원인으로 봤고, 사람이 너무 많이 타서 배가 무겁고 위쪽이 무거워진 것이 문제를 키웠다고 했어요. 굽이진 강을 따라 올라가는 동안 배는 좌우로 크게 기울었어요. 네 보일러는 나란히 서로 연결돼 있어서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가장 높은 쪽 보일러에서 물이 빠져나갔어요. 불은 계속 타고 있으니 빈 보일러에 열점이 생겼고, 배가 반대로 기울며 물이 되돌아오면 뜨거운 쇠에 닿은 물이 순식간에 증기로 바뀌면서 압력이 치솟았어요. 조사는 이 기울어짐, 낮은 물 높이, 며칠 전의 엉터리 수리가 겹쳐 폭발했다고 결론 냈어요.

2015년에는 하트퍼드 증기보일러 검사보험회사의 수석 엔지니어 팻 제닝스가 원인을 다시 분석했어요. 이 회사는 술타나호 폭발을 계기로 1866년에 세워진 곳이에요. 그는 세 가지를 꼽았어요. 보일러 재료인 '차콜 해머드 1호' 철은 오래 가열과 냉각을 되풀이하면 잘 부서지는 성질이 있었고, 1879년 이후로는 보일러에 쓰이지 않았어요. 진흙이 많은 미시시피강 물을 보일러에 그대로 넣어 침전물이 바닥과 연관 사이에 쌓이며 열점을 만들었어요. 좁은 보일러 안에 연관 24개가 촘촘히 들어찬 설계도 청소를 어렵게 했어요. 이 연관식 보일러를 쓴 증기선 두 척이 얼마 뒤 또 폭발하자 미시시피강 하류 증기선에서는 이 방식을 더 쓰지 않게 됐어요.

사보타주 주장도 있었어요. 1888년 한 세인트루이스 주민은 남부연합 공작원 출신 동업자가 술집에서 석탄으로 위장한 폭탄을 넣었다고 자백했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폭발은 화실에서 먼 보일러 위쪽 뒷부분에서 일어났고, 술타나호는 나무가 아니라 석탄을 때는 배였기 때문에 화약을 채운 통나무가 섞여 들어갔다는 1903년의 다른 주장도 맞지 않아요. 대부분의 학자는 공식 설명을 받아들여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참사와 콩밭 아래 잠든 배

이만한 참사였지만 공식적으로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어요. 수용소에서 포로 1,950명을 빅스버그로 보낸 프레더릭 스피드 대위는 과적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수용소에 있었고 직접 한 명도 배에 태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육군 법무감이 판결을 뒤집었어요. 병사들을 직접 태운 윌리엄스 대위는 웨스트포인트 출신 정규군 장교였고, 군은 그를 문제 삼지 않았어요. 뇌물을 꾸민 해치는 군법회의를 피해 서둘러 군을 떠나 숨었고, 스피드 대위 재판에 증인으로 나오라는 소환장을 세 번 모두 거부했어요. 그는 1871년 세상을 떠났어요. 과적과 엉터리 수리에 동의한 메이슨 선장은 사고로 숨졌어요.

사고는 신문에서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어요. 바로 전날 링컨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가 사살되는 등 남북전쟁 종전 무렵의 큰 사건들이 지면을 채웠기 때문이에요. 살아남은 병사들은 1885년 12월부터 북부 주에서, 1889년부터 남부 주에서 해마다 4월 27일 무렵 모임을 열었어요. 1929년 남부 모임에는 두 명, 이듬해에는 한 명만 나왔어요. 마지막 생존자 찰스 엘드리지는 1941년 9월 8일 96살로 세상을 떠났어요.

콘크리트 기둥에 붙은 남색 금속판에 술타나호의 상실이라는 제목과 영어 설명이 금색 글씨로 새겨져 있어요
아칸소주 매리언에 있는 술타나호 기념 안내판. 2000년 미국혁명의 딸들 아칸소 지부가 세웠고, 2012년에 찍은 사진이에요. · Thomas R Machnitzki · CC BY 3.0 · Wikimedia Commons

1982년 멤피스의 변호사 제리 포터가 이끈 발굴팀은 아칸소 쪽, 멤피스에서 약 4마일(6km) 떨어진 콩밭 지하 약 32피트(10m)에서 검게 탄 갑판 널과 목재를 찾았어요. 술타나호의 잔해로 여겨지는 것이에요. 사고 뒤 미시시피강의 물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지금 강의 본류는 1865년보다 약 2마일(3km) 동쪽으로 옮겨 갔고, 잔해는 마른 땅 아래에 남게 됐어요. 사고 150주년인 2015년에는 잔해와 가장 가까운 아칸소주 매리언에 임시 술타나 참사 박물관이 문을 열었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술타나호 참사

항목기록환산·계산
배 크기길이 260피트, 폭 42피트약 79m × 13m
정원승객 376명 + 선원 85명모두 461명
실제 탑승포로 1,950 + 경비병 22 + 승객 70 + 선원 852,127명, 승객 정원의 약 5.7배
포로 운임사병 2.75달러, 장교 8달러1,950명이 모두 사병이라면 약 5,363달러(단순 계산)
폭발 위치멤피스 북쪽 7마일약 11km
선체 구멍25~30피트약 7.6~9.1m
침몰폭발 약 5시간 뒤 아침 7시쯤약 10km 떠내려감
사망자 추정1,100~1,547명, 최근 연구 1,164명2,127 − 생존자 963 = 1,164
마지막 생존자1941년 9월 8일 별세사고 후 76년 4개월
잔해 위치콩밭 지하 32피트약 10m, 강 본류는 약 3km 동쪽으로 이동

과적 정도를 계산해 보면 2,127 ÷ 376 ≈ 5.66이라 승객 정원의 5.7배쯤 되고, 선원을 포함한 전체 정원 461명과 비교해도 2,127 ÷ 461 ≈ 4.6배예요. 피트를 미터로 바꿀 때는 0.3048을 곱하면 되니 260피트는 79.2m, 25~30피트는 7.6~9.1m예요. 마일은 1.609를 곱해 7마일이 약 11.3km가 돼요. 운임은 장교와 사병의 비율을 알 수 없어 모두 사병이라고 가정한 단순 계산이에요. 1865년 4월 27일부터 마지막 생존자가 숨진 1941년 9월 8일까지는 76년 4개월 남짓이 흘렀어요.

배든 버스든 정원은 안전하게 버틸 수 있는 한계를 계산한 숫자예요. 술타나호처럼 사람이 정원을 훨씬 넘게 타면 배가 무거워지고 쉽게 기울어 사고 위험이 커지고, 사고가 나도 구명 장비와 대피 공간이 모자라요. 배를 탈 때는 정원과 구명조끼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정원을 넘겨 태우는 배는 타지 마세요.

술타나호 사고 자주 묻는 질문

술타나호 사고로 몇 명이 숨졌나요?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최근 연구는 1,164명으로 봐요. 당시 집계는 1,100명에서 1,547명까지 기관마다 달랐어요.
술타나호는 왜 폭발했나요?
공식 조사는 보일러 물 높이 관리 실패, 과적으로 배가 좌우로 크게 기운 것, 며칠 전 얇은 판을 덧댄 임시 수리가 겹쳐 보일러가 터졌다고 결론 냈어요.
술타나호 사고는 미국 최악의 해난 사고인가요?
네, 지금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숨진 해난 사고로 꼽혀요. 사고가 난 곳은 바다가 아니라 미시시피강이었고, 뒷날 한 노래에서는 '미시시피의 타이태닉'이라고 불렀어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