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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이야기

발밑도 안 보이는 안개가 닷새간 도시를 덮었다: 1952년 런던 그레이트 스모그, 최대 1만 2천 명이 숨진 영국 최악의 대기오염

1952년 12월 5일부터 9일까지 런던을 덮은 스모그는 처음엔 4,000명이 숨졌다고 집계됐지만, 이후 연구는 사망자를 1만~1만 2천 명으로 봐요. 석탄 연기와 기온 역전이 만든 닷새의 기록, 사망자 수가 세 배로 늘어난 이유, 1956년 청정대기법까지 기록을 따라가 봤어요.

1952년 12월 짙은 스모그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넬슨 기념탑
1952년 12월 그레이트 스모그 속의 넬슨 기념탑. · N T Stobbs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런던 사람들에게 안개는 낯선 손님이 아니었어요. 누렇고 탁한 런던 안개에는 '완두콩 수프'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1952년 12월 5일 금요일, 도시가 다시 안개에 잠겼을 때도 처음에는 아무도 크게 놀라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안개는 닷새 동안 걷히지 않았고, 걷힌 뒤에는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간 것으로 드러났어요. 영국 역사상 최악의 대기오염 사건으로 꼽히는 '그레이트 스모그'예요.

스모그는 12월 5일부터 9일 화요일까지 이어지다 날씨가 바뀌자 금세 흩어졌어요. 정부 의료 보고서는 몇 주 뒤 스모그 때문에 최대 4,000명이 숨지고 10만 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았다고 추정했어요. 하지만 이후 연구들은 실제 사망자가 훨씬 많아서 1만~1만 2천 명에 이르렀다고 봐요.

700년 묵은 런던의 공기 문제

런던의 공기가 나쁘다는 불평은 적어도 13세기부터 있었어요. 1661년 일기 작가 존 이블린은 공기 오염을 다룬 최초의 책으로 꼽히는 『푸미푸기움』에서 런던의 공기와 연기가 주는 불편을 적었어요. 1880년에는 기상학자 롤로 러셀이 소책자 『런던 안개』에서 짙지도 않은 연기 안개 때문에 해마다 많은 사람이 폐 질환으로 숨진다고 경고했어요. 1853년과 1856년의 매연 감축법, 1891년 공중보건법처럼 공기를 개선하려는 법도 여러 번 나왔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어요.

그래도 1952년의 스모그는 그 전에 런던이 겪은 어떤 안개보다 몇 배나 심했어요. 그리고 이 사건은 대기 질과 건강의 관계를 바라보는 연구와 규제,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어요.

추운 겨울과 질 나쁜 석탄

스모그 전후로 유난히 추운 날씨가 이어지자 런던 사람들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석탄을 땠어요. 문제는 석탄의 질이었어요. 무연탄 같은 좋은 석탄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진 빚을 갚으려고 주로 수출됐고, 집에서 때는 석탄은 '너티 슬랙'이라 불린 질 낮은 석탄이었어요. 갈탄과 비슷한 이 석탄은 황 성분이 많아서 연기 속 이산화황을 크게 늘렸어요.

런던 일대에는 석탄을 때는 발전소도 많았어요. 풀럼, 배터시, 뱅크사이드, 그리니치, 웨스트햄, 킹스턴어폰템스 발전소가 모두 오염에 한몫했어요. 연구에 따르면 배터시 발전소에 추가로 달린 오염 방지 장치가 오히려 공기를 나쁘게 했어요. 배출 가스를 물로 씻는 장치가 가스의 온도를 낮추자 연기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땅 쪽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에요. 증기기관차와, 얼마 전 폐지된 전차를 대신해 다니던 디젤 버스의 배기가스도 더해졌어요.

굴뚝 두 개가 서 있는 1934년 무렵의 런던 배터시 발전소 사진
굴뚝이 두 개뿐이던 1934년 무렵의 배터시 발전소. 1938년 책 『우리 세대』에 실린 사진이에요. · 작자 미상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바람 한 점 없는 고기압이 뚜껑을 덮었어요

1952년 12월 4일, 바람이 없는 런던 위에 고기압이 자리 잡았어요. 그러자 '기온 역전'이 일어났어요. 보통은 땅 가까운 공기가 따뜻해서 위로 올라가며 연기를 흩어 놓는데, 이때는 차갑고 정체된 공기가 위쪽의 따뜻한 공기층 아래에 갇혔어요. 냄비에 뚜껑을 덮은 것처럼 연기가 빠져나갈 길이 막힌 셈이에요.

그렇게 생긴 안개에 집과 공장 굴뚝의 연기, 자동차 배기가스의 미세한 입자, 이산화황 같은 오염 물질이 섞여 다음 날 수도 전체를 덮었어요. 타르 성분이 섞인 그을음 입자 때문에 스모그는 녹색이 도는 누런빛을 띠었어요. 바람이 거의 불지 않아 오염 물질은 흩어지지 않고 전례 없이 쌓여 갔어요.

영국 기상청에 따르면 스모그가 이어진 동안 날마다 연기 입자 1,000톤, 염산 140톤, 불소 화합물 14톤, 이산화황 370톤이 공기 중으로 나왔어요. 이 이산화황은 황산 800톤으로 바뀌었을 수 있어요. 런던 안개의 물방울이 비교적 커서 황산염이 만들어지는 반응이 멈추지 않았고, 해가 나서 안개가 마르면 묽은 산이 진하게 농축됐어요.

항목기록
기간1952년 12월 5일(금)~9일(화)
원인석탄 연기 + 고기압과 기온 역전, 무풍
하루 배출량(기상청)연기 입자 1,000t, 이산화황 370t, 염산 140t, 불소 화합물 14t
가장 나빴던 시야12월 7일 일요일, 약 30cm(1피트)
당시 공식 사망자약 4,000명, 환자 약 10만 명
후속 연구 추정1만~1만 2천 명
대표 입법1956년 청정대기법

시야 30cm, 멈춰 선 도시

12월 7일 일요일에는 시야가 1피트, 약 30cm까지 줄었어요. 한 방문객은 마치 눈이 먼 것 같았다고 말했어요. 운전은 어려웠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했어요. 지하철을 뺀 대중교통이 멈췄고, 교통사고가 잇따라 구급차가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어요.

스모그는 건물 안까지 스며들었어요. 넓은 실내에서도 시야가 흐려져 객석에서 무대와 스크린이 잘 보이지 않자 음악회와 영화 상영이 취소되거나 중간에 멈췄어요. 야외 스포츠 경기도 줄줄이 취소됐어요. 차가 다니지 않는 뒷골목은 안개를 흩어 줄 움직임도 없어서 낮에도 시야가 1m 남짓이었어요. 사람들은 연석 같은 장애물을 발로 더듬으며 걸어야 했어요. 밤이면 더 심했어요. 골목 가로등은 백열전구여서 빛이 안개를 뚫고 발밑까지 닿지 못했어요. 안개를 잘 뚫는 형광등은 1950년대 후반에야 널리 쓰였어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약국에서 '스모그 마스크'를 사서 썼어요.

4,000명에서 1만 2천 명으로 늘어난 사망자 수

스모그가 걷히고 몇 주 뒤, 의료 당국의 통계는 안개로 4,000명이 숨졌다고 집계했어요. 희생자 가운데에는 아주 어린 아이나 노인, 원래 호흡기나 심혈관 질환을 앓던 사람이 많았어요. 1953년 2월 노동당 의원 마커스 립턴은 하원에서 사망자가 6,000명이고, 그 기간 런던에서 2만 5천 명이 더 질병 수당을 신청했다고 주장했어요.

사망률은 스모그가 걷힌 뒤에도 몇 달 동안 높게 유지됐어요. 끝내 확정되지 않은 예비 보고서는 이 죽음들을 독감 유행 탓으로 돌렸어요. 하지만 독감으로 설명할 수 있는 죽음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증거가 나왔어요. 정부 과학산업연구부에서 대기오염을 책임지던 E. T. 윌킨스는 1952년 12월부터 1953년 3월까지의 사망률을 그래프로 그렸고, 처음 집계된 숫자 말고도 8,000명이 더 숨져 모두 1만 2천 명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 줬어요.

1952년 11월부터 1953년 3월까지 런던의 주간 사망자 수를 전년과 비교한 그래프, 스모그 직후 급증한 4,000명과 이후 8,000명이 표시됨
E. T. 윌킨스가 1953년 무렵 만든 주간 사망자 그래프. 스모그 직후 늘어난 4,000명(빨간색)에 이어 몇 달 동안 8,000명(파란색)이 더 숨졌다는 것을 보여 줘요. · Great Britain Committee on Air Pollution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사망자 대부분은 호흡기 감염으로 숨졌어요. 산소 부족, 그리고 스모그가 일으킨 폐 감염으로 생긴 가래와 고름이 기도를 막은 것이 원인이었어요. 폐 감염은 주로 기관지 폐렴, 또는 만성 기관지염 위에 겹친 급성 화농성 기관지염이었어요. 2004년에 발표된 연구도 사망자를 약 1만 2천 명으로 봤어요. 당시 정부 공식 집계의 서너 배이고, 윌킨스가 처음 추정한 숫자와 거의 같아요.

피해는 그해 겨울로 끝나지 않았어요. 장기적으로 보면 스모그가 덮쳤을 때 엄마 배 속에 있었거나 갓난아기였던 사람들은 또래보다 지능이 낮고 호흡기 건강도 나빴던 것으로 나타났어요.

1952년 12월 런던의 연기 농도, 이산화황 농도와 하루 사망자 수가 함께 오르내린 것을 보여 주는 그래프
그레이트 스모그 동안 연기·이산화황 농도와 사망자 수가 함께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기오염 위원회 자료. · Great Britain Committee on Air Pollution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런던만의 안개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흔히 '런던' 스모그라고 부르지만 오염은 수도 밖까지 넓게 퍼졌어요. 윌킨스에 따르면 안개나 흰 연무, 더러운 스모그가 영국 여러 지역을 덮었고, 런던과 템스강 유역에서는 1,000제곱마일이 넘는 땅이 안개나 스모그에 덮였어요. 1,000제곱마일은 약 2,590㎢예요. 다만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런던이었어요. 윌킨스의 측정 자료는 연기와 이산화황, 그리고 늘어난 사망자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보여 줬어요.

청정대기법이 나오기까지 걸린 4년

정부는 처음에 행동에 나서기를 꺼렸고, 경제 사정 때문에 문제의 크기를 줄여 말하려 했어요. 대신 토목 기술자 휴 비버 경이 이끄는 대기오염 위원회가 꾸려져 문제를 조사했어요. 위원회는 깨끗한 공기가 이제 19세기 중반의 깨끗한 물만큼 중요하다고 보고했고, 집에서 때는 석탄을 코크스로 바꾸고 전기와 가스 같은 '무연' 연료를 더 쓰자고 제안했어요.

반발도 있었어요. 위원회는 도시 발전소에 배기가스 탈황 장치를 달자고 권했지만, 영국 전력청은 모든 발전소에 세정 장치를 달려면 해마다 1,000만 파운드를 투자해야 하고 전기 1kWh당 값이 0.1펜스 오른다며 반대했어요. 결국 법을 움직인 것은 평의원들이었어요. 보수당 의원 제럴드 나바로가 집 석탄 난방을 다루는 의원 입법안을 낸 것을 계기로 정부도 법 개정을 지지하게 됐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1956년 청정대기법은 도시에 '매연 통제 구역'을 정해 무연 연료만 때게 할 수 있게 했어요. 굴뚝에서 짙은 연기를 내뿜지 못하게 하고, 새 화로는 연기가 나지 않게 만들고, 굴뚝을 더 높이 세우게 하고, 재와 먼지 배출을 줄이게 했어요. 개인 가정에서 당연하게 하던 일을 법으로 막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느냐는 논쟁에도 큰 의미가 있었어요. 집집마다 벽난로를 가스난로로 바꾸거나 연기가 적은 코크스를 때도록 보조금도 줬어요. 중앙난방은 당시 드물었고 1960년대 후반에야 널리 퍼졌어요.

그 뒤에도 스모그는 다시 찾아왔어요

법이 생겼다고 하늘이 하루아침에 맑아지지는 않았어요. 1957년 12월 2~5일 런던 안개 때는 연기와 이산화황 농도가 1952년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 760~1,000명이 숨졌어요. 1962년 12월 초에도 스모그가 다시 찾아와 750명이 숨졌어요. 1954년 시티오브런던법, 1968년 청정대기법이 뒤따르며 대기오염은 점점 줄었어요. 1968년 법은 굴뚝에서 짙은 연기를 내는 것을 범죄로 정했어요. 1956년과 1968년 법은 1993년 청정대기법에 흡수되며 폐지됐어요.

연도일
1661존 이블린, 『푸미푸기움』에서 런던 연기 비판
1952그레이트 스모그(12월 5~9일)
1954시티오브런던법
1956청정대기법 제정
1957다시 스모그, 760~1,000명 사망
1962다시 스모그, 750명 사망
1968청정대기법 개정·확대
1993새 청정대기법으로 통합

이 사건은 대중문화에도 자주 등장해요. 1954년 BBC 라디오 코미디 「군 쇼」는 안개가 낀 날에만 런던의 동상들이 걸어 다닌다는 설정으로 스모그를 풍자했고,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1의 4화도 이 스모그를 다뤘어요. 평론가들은 드라마의 묘사가 대체로 정확하지만 정치적 파장과 병원의 혼란은 꽤 부풀려졌다고 봤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그레이트 스모그

스모그는 12월 5일부터 9일까지 닷새 동안 이어졌어요. 기상청이 밝힌 하루 배출량을 닷새로 곱하면 연기 입자 약 5,000톤, 이산화황 약 1,850톤, 염산 약 700톤이 런던 하늘에 쏟아진 셈이에요. 이산화황이 황산으로 바뀌었다면 황산은 닷새 동안 4,000톤에 이르러요. 물론 이 계산은 매일 같은 양이 나왔다고 가정한 대략적인 값이에요.

사망자 수를 보면 공식 집계 4,000명과 후속 추정 1만 2천 명은 정확히 세 배 차이예요. 윌킨스의 그래프에 적힌 평균을 보면, 스모그 뒤 12주(24~35주) 동안 주당 평균 사망자는 1951~52년 겨울 2,014명에서 1952~53년 겨울 3,068명으로 늘었어요. 한 주에 약 1,054명이 더 숨진 셈이고, 12주를 곱하면 약 1만 2,600명이에요. 시야 1피트는 30.48cm, 1956년 법은 스모그 뒤 4년 만에 생겨 1993년까지 37년 동안 효력을 가졌어요. 이블린의 책에서 그레이트 스모그까지는 291년이 걸렸어요.

미세먼지나 스모그가 심한 날에는 외출을 줄이고, 꼭 나가야 하면 보건용 마스크를 쓰세요. 어린이와 노인, 호흡기·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은 특히 조심해야 하고, 숨이 차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바로 병원 진료를 받으세요.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