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8년 여름 런던의 국회의원들은 회의 중에 코를 막았어요. 국회의사당 바로 앞을 흐르는 템스강에서 올라오는 냄새 때문이었어요. 의사당 창에는 표백 약품을 적신 커튼이 걸렸고, 한 의원은 템스강을 '저승의 웅덩이'라고 불렀어요. 이 여름을 영국 사람들은 '대악취(The Great Stink)'라고 기억해요. 냄새 하나가 의회를 움직였고, 그렇게 지어진 하수도가 런던에서 콜레라를 몰아냈어요. 그 과정을 따라가 볼게요.
수세식 변기가 강을 하수구로 만들었어요
런던에는 17세기부터 벽돌 하수도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 하수도는 원래 빗물을 흘려보내기 위한 것이었어요. 사람의 배설물은 집마다 있는 정화조, 곧 분뇨 구덩이에 모아 두었다가 퍼냈어요. 1856년 무렵 런던에는 이런 구덩이가 약 20만 개, 하수도는 360개가 있었고 상당수가 낡아 있었어요.
상황을 바꾼 것은 수세식 변기였어요. 물로 씻어 내리는 변기가 퍼지면서 엄청난 양의 물과 오물이 하수도로 흘러들었어요. 같은 기간 런던 인구는 100만 명이 안 되던 데서 300만 명으로 늘었어요. 넘쳐난 하수는 결국 대부분 템스강으로 흘러갔어요. 런던 사람들이 마시는 물을 뜨는 바로 그 강이었어요.
콜레라로 3만 명이 숨졌어요
| 연도 | 런던 콜레라 사망자 |
|---|---|
| 1831년 | 6,536명 |
| 1848~1849년 | 1만 4,137명 |
| 1853~1854년 | 1만 738명 |
| 1866년 | 5,596명(배절제트 하수도 밖의 이스트엔드) |
세 번의 유행으로 3만 1천 명이 넘게 숨졌어요.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가 물이 아니라 나쁜 공기로 퍼진다고 믿었어요. 이 생각을 '미아스마 이론'이라고 해요. 썩은 냄새 자체가 병을 옮긴다는 것이었어요. 의사 존 스노는 1849년에 콜레라가 물로 퍼진다는 이론을 내놓았지만 주목받지 못했어요.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에서 콜레라가 돌았을 때 그는 환자들이 같은 물 펌프를 썼다는 사실을 찾아내 오염된 물과 콜레라를 연결했어요. 그래도 미아스마 이론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어요.
하수 관리를 하나로 모으기까지
런던의 하수 관리는 오랫동안 여러 기관에 쪼개져 있었어요. 헨리 8세 때부터 여덟 개의 기관이 지역별로 하수도를 맡았어요. 1848년 공중위생 개혁가 에드윈 채드윅 등의 주장으로 '수도 하수 위원회'가 생겨 이 가운데 일곱 곳을 대신하면서, 처음으로 한 기관이 수도 전체의 위생을 맡게 됐어요. 그런데 채드윅이 밀어붙인 하수도 정기 세척 정책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오물을 템스강으로 밀어 보냈어요. 1855년에는 수도 관리법으로 '수도 공사 위원회'가 만들어져 하수도를 넘겨받았어요.
과학자들도 목소리를 냈어요. 전자기 유도를 발견한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1855년 7월 『타임스』에 편지를 보냈어요. 그는 흰 종이 조각을 템스강에 떨어뜨려 물이 얼마나 탁한지 시험했고, 강 전체가 '그 순간 진짜 하수구였다'고 썼어요. 펀치지는 이 일을 패러데이가 템스 할아버지에게 명함을 건네는 풍자화로 그렸어요.
1858년 6월, 그늘에서 섭씨 34~36도
1858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어요. 6월 런던의 그늘 기온은 평균 섭씨 34~36도였고, 햇볕 아래에서는 48도까지 올랐어요. 비가 오지 않아 템스강의 수위가 내려가자 강가에 쌓인 오물이 그대로 드러나 햇볕에 데워졌어요. 냄새가 런던 전체를 뒤덮었어요. 대악취는 7월과 8월 내내 이어졌어요.

국회의사당의 약품 커튼
템스강변에 서 있는 국회의사당은 냄새를 피할 수 없었어요. 강 쪽 창에 걸린 커튼을 염화석회 용액에 적셔 냄새를 막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염화석회는 표백과 소독에 쓰던 약품이에요. 당시 하원에서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템스강을 '형언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공포로 악취를 풍기는 저승의 웅덩이'라고 표현했어요. 국회의원들이 직접 냄새를 맡게 되자 오랫동안 미뤄지던 일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1858년 6월 15일 수도 관리 개정 법안이 상정됐고, 약 7주 뒤인 8월 2일 통과됐어요. 이 법으로 수도 공사 위원회는 300만 파운드를 빌릴 수 있게 됐어요. 빚은 런던 가구에 40년 동안 세금을 매겨 갚기로 했어요. 흔히 이 법이 18일 만에 통과됐다고 소개되지만 실제 기록은 약 7주예요.

조지프 배절제트의 하수도
공사를 맡은 사람은 수도 공사 위원회의 수석 기술자 조지프 배절제트였어요. 그의 계획은 1858년에 승인됐고 공사는 1859년 1월 31일에 시작해 1875년에 끝났어요. 핵심은 강으로 바로 흘러들던 하수를 강과 나란히 달리는 거대한 차집관으로 가로채, 사람이 사는 곳보다 훨씬 하류로 보내는 것이었어요.
| 항목 | 규모 |
|---|---|
| 거리 하수도 | 약 1,100마일(약 1,800km) |
| 주 차집 하수도 | 82마일(132km) |
| 사용한 벽돌 | 3억 1,800만 장 |
| 콘크리트와 모르타르 | 약 88만 입방야드(약 67만㎥) |
| 최종 공사비 | 약 650만 파운드 |
| 공사 기간 | 1859년 1월 31일 ~ 1875년 |

가장 낮은 곳을 지나는 하수도는 템스강을 따라 새로 쌓은 강둑 안에 묻었어요. 앨버트 강둑은 1869년 11월에, 빅토리아 강둑은 1870년 7월에, 첼시 강둑은 1874년 7월에 완성됐어요.

하수를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펌프장도 세웠어요. 템스강 남쪽의 크로스니스 펌프장은 1865년 4월 웨일스 공의 기념식과 함께 가동을 시작했어요. 북쪽의 애비 밀스 펌프장은 하수를 36피트, 약 11m 끌어올려 벡턴 방류구로 이어지는 주 하수도에 보냈어요.

배절제트는 1849년 8월 수도 하수 위원회의 보조 측량사로 들어왔고, 1852년 수석 기술자 프랭크 포스터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 명의 다른 지원자와 경쟁해 그 자리를 이었어요. 그의 계획에서 동네 하수관은 지름 약 0.9m, 이를 모으는 큰 하수관은 높이 약 3.4m였어요. 그는 인구가 300만 명에서 450만 명으로 늘어나는 것까지 내다보고 설계했어요. 크로스니스 펌프장에는 제임스 와트 회사가 만든 대형 증기 기관 네 대가 들어갔고, 빅토리아, 프린스 콘소트, 앨버트 에드워드,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건축 비평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는 애비 밀스 펌프장을 두고 '가장 더러운 목적에 쓰인 흥미진진한 건축'이라고 평했어요.
다만 처음부터 하수를 깨끗이 처리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수는 벡턴과 크로스니스의 방류구에서 정화되지 않은 채 템스강 하류로 흘려보내졌어요. 크로스니스에서는 만조 때 방류했어요. 1878년 방류구 가까운 곳에서 유람선 프린세스 앨리스호가 다른 배와 부딪혀 가라앉아 650명 넘게 숨졌을 때, 신문들은 하수가 일부 희생자의 죽음에 영향을 미쳤는지 물었어요. 정화 처리는 1880년대에 시작됐고, 걸러 낸 찌꺼기를 배로 북해에 내다 버리는 일은 1887년부터 1998년 12월까지 이어졌어요. 2015년 템스 워터에 따르면 이 하수도망을 하루 최대 800만 명이 썼어요. 150년 넘은 하수도가 지금도 런던의 바닥을 받치고 있어요.
냄새를 없애려다 콜레라를 끝냈어요
역사의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어요. 의회가 하수도에 돈을 쓴 이유는 냄새, 곧 미아스마가 병을 옮긴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이유는 틀렸지만 결과는 맞았어요. 하수가 식수원으로 흘러들지 않게 되자 물로 퍼지는 콜레라가 줄어든 거예요.
1866년의 콜레라 유행이 그 증거가 됐어요. 이 유행으로 5,596명이 숨졌는데, 피해는 아직 배절제트의 하수도가 닿지 않은 이스트엔드에 몰렸어요. 원인은 한 수도 회사가 저수지 상류에 하수를 흘려보낸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것이 런던의 마지막 콜레라 유행이었어요. 역사가 존 독새트는 배절제트가 빅토리아 시대의 어떤 관료보다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했어요.
배절제트가 설계 기준으로 삼은 인구는 450만 명이었어요. 2015년 템스 워터가 밝힌 하루 최대 이용자 800만 명은 그 기준의 약 1.8배예요. 주 차집 하수도 132km만 해도 서울 지하철 2호선 순환선 길이(약 60km)의 두 배가 넘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대악취
그늘 기온 섭씨 34~36도는 화씨 93~97도예요. 햇볕 아래 48도는 화씨 118도예요. 거리 하수도 1,800km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약 325km)의 다섯 배가 넘는 길이예요. 벽돌 3억 1,800만 장은 공사 기간 16년 동안 하루 평균 5만 4천 장 넘게 쌓은 셈이에요. 법안 상정부터 통과까지 6월 15일에서 8월 2일까지는 48일이었어요. 냄새가 바꾼 도시의 규모가 숫자에 담겨 있어요.
이 글은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썼어요. 콜레라는 지금도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퍼지는 감염병이에요. 해외여행 때는 끓이거나 병에 든 물을 마시고, 설사와 구토가 심하면 바로 의료기관을 찾으세요.
참고 자료
- Wikipedia, Great Stink
- 사진: The silent highwayman
- 사진: Father Thames introducing his offspring to the fair city of London
- 사진: How Dirty Old Father Thames was Whitewashed
- 사진: Installation of the sewerage system of the Metropolis Wellcome M0010346
- 사진: Portrait of Sir Joseph William Bazalgette (1819-1891) Wellcome M0016460
- 사진: The Prince of Wales opening the Metropolitan Main-drainage works at Crossness, ILN, 18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