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4월 13일 밤(미국 동부 시각), 지구에서 약 33만 km 떨어진 우주에서 '꽤 큰 쾅' 소리가 났어요. 달 착륙을 위해 날아가던 아폴로 13호의 기계선(서비스 모듈)에서 산소 탱크 하나가 터진 거예요. 산소는 승무원이 숨 쉬는 데에도, 우주선의 전기를 만드는 연료전지에도 필요했어요. 세 번째 달 착륙이 될 예정이던 임무는 그 순간부터 세 사람을 살려서 데려오는 일로 바뀌었어요.
결과부터 말하면 사령관 짐 러벌, 사령선 조종사 잭 스와이거트, 달 착륙선 조종사 프레드 헤이즈는 4월 17일 남태평양에 무사히 내려앉았어요. 러벌은 이 비행을 '성공적인 실패'라고 불렀고, 사고 대응은 지금도 'NASA 최고의 순간'으로 자주 꼽혀요. 영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기록을 따라가면 영화보다 덜 극적이면서 더 아슬아슬한 장면이 많아요.
발사 이틀 전 바뀐 승무원
원래 사령선 조종사는 켄 매팅리였어요. 발사 일주일 전, 예비 승무원 찰스 듀크가 아들 친구에게서 풍진에 옮았어요. 주 승무원과 예비 승무원은 함께 훈련했기 때문에 모두 노출됐고, 다섯 명 가운데 예전에 앓아서 면역이 없는 사람은 매팅리뿐이었어요. 그래서 발사 이틀 전 매팅리 대신 예비 승무원 스와이거트가 들어갔어요. 매팅리는 끝내 풍진에 걸리지 않았고 나중에 아폴로 16호를 탔어요.
승무원들은 임무만을 위해 1,000시간 넘게 훈련했어요. 계획된 열흘짜리 비행 한 시간마다 다섯 시간 넘게 준비한 셈이에요. 착륙 예정지는 프라 마우로 고지였고, 임무 표어는 라틴어로 '달에서 지식을(Ex luna, scientia)'이었어요. 사령선 이름은 '오디세이', 달 착륙선 이름은 '물을 나르는 자'라는 뜻의 '아쿠아리어스'였어요.

발사는 4월 11일 예정 시각에 이뤄졌어요. 올라가는 길에도 이상이 하나 있었어요. 2단 로켓 가운데 엔진이 '포고 진동'이라는 심한 떨림 때문에 예정보다 2분쯤 일찍 꺼졌거든요. 나머지 엔진이 더 오래 타서 궤도는 계획과 거의 같았지만, 나중 조사에서 그 엔진은 한 번만 더 떨렸어도 크게 부서졌을 거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여유로운 장면도 있었어요. 비행 중 스와이거트는 마감(4월 15일)인 연방 소득세 신고를 깜빡했다며 연장 방법을 물어 관제실을 웃게 했고, 신고 마감일에 국외에 있으면 60일 연장을 받을 수 있다는 답을 들었어요.
평소처럼 돌린 탱크 팬, 그리고 95초 뒤
사고 직전 승무원들은 TV 중계를 막 마쳤어요. 정작 방송사는 한 곳도 이 중계를 내보내지 않았다고 해요. 그 무렵 기계선 산소 탱크의 압력 센서가 이상해 보이자 전기 계통 담당 관제사 사이 리버곳이 탱크 안 교반 팬을 돌려 달라고 요청했어요. 액체 산소가 층을 이루면 압력 값이 부정확해져서 하루 한 번쯤 섞어 주는 일상 작업이었어요. 비행 감독 진 크랜츠는 승무원이 중계 뒤 자리를 정리하도록 몇 분 기다리게 했고, 교신 담당(캡컴) 잭 루즈마가 요청을 전하자 스와이거트가 스위치를 켰다가 몇 초 뒤 껐어요.
중계가 끝나고 6분 30초쯤 지난 때, 스위치를 켜고 95초 뒤 승무원들은 '꽤 큰 쾅' 소리를 들었어요. 전력이 출렁였고 자세 제어 추진기가 저절로 분사됐어요. 지구와의 통신과 원격 측정은 1.8초 동안 끊겼다가, 고이득 안테나가 좁은 빔에서 넓은 빔으로 자동 전환되며 돌아왔어요. 비행 경과 시간 55시간 54분 53초, 협정 세계시로 4월 14일 03시 08분(동부 표준시 4월 13일 밤 10시 08분)이었어요. 26초 뒤 스와이거트가 "좋아요, 휴스턴, 여기 문제가 생겼었어요(we've had a problem here)"라고 알렸고, 러벌이 "메인 B 버스 전압 저하"라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어요.

처음엔 아무도 상황을 몰랐어요. 러벌은 헤이즈가 장난으로 착륙선 압력 밸브를 열어 쾅 소리를 낸 줄 알았어요. 헤이즈는 그 장난으로 동료들을 놀라게 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스와이거트는 운석이 착륙선을 때렸나 생각했지만 공기가 새지는 않았어요. 곧 연료전지 세 개 중 두 개가 죽었고, 2번 탱크는 비었으며 1번 탱크 압력도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요. 리버곳은 처음에 계기 오류일 수 있다고 답했다가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고 해요. 결정타는 창밖을 본 러벌의 보고였어요. 무언가 가스가 우주로 뿜어져 나가고 있다는 말이었죠.
달 착륙선을 구명보트로 쓰다
산소가 바닥나면 마지막 연료전지도 멈추고, 사령선에 남는 것은 재진입 때 써야 할 배터리와 작은 비상 산소 탱크뿐이었어요. 크랜츠는 비상 탱크를 차단해 아껴 두게 했고, 승무원들에게 달 착륙선 아쿠아리어스를 켜서 '구명보트'로 쓰라고 지시했어요. 이런 상황에 대비한 절차는 아폴로 10호 훈련 때 착륙선을 제때 켜지 못한 모의 실험을 계기로 착륙선 관제팀이 미리 만들어 둔 것이었어요. 기록은 냉정해요. 사고가 달에서 돌아오는 길, 착륙선을 이미 버린 뒤에 일어났거나 달 궤도에서 일어났다면 세 사람은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요.
다음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기계선 주 엔진으로 바로 되돌아오는 '직접 귀환'은 엔진이 손상됐을 수 있어 포기했어요. 대신 달을 한 바퀴 돌아 지구로 오는 길을 택했어요. 프라 마우로로 가려고 '자유 귀환 궤도'에서 벗어나 있던 우주선을 다시 그 궤도로 돌려놓아야 했죠. 사령선을 끄기 전 러벌은 사령선 항법 장치의 자세 정보를 받아 적고 손으로 계산해 착륙선 항법 장치로 옮겼고, 관제실이 그 숫자를 검산했어요. 비행 61시간 29분 43초, 착륙선 하강 엔진을 34.23초 분사해 우주선은 자유 귀환 궤도로 돌아왔어요.
그 궤도로는 나흘 뒤 인도양에 떨어지게 돼 있었어요. 주 회수 부대는 태평양에 있었죠. 기계선을 버리고 36시간을 줄이는 안도 나왔지만 사령선 열 차폐막을 우주에 오래 드러내야 해서 택하지 않았어요. 최종 결정은 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지 2시간 뒤 하강 엔진을 4분 23초 분사해 12시간을 줄이고 태평양에 내리는 'PC+2' 분사였어요. 별을 보고 자세를 확인해야 했지만 폭발 파편이 햇빛에 반짝여 별을 구분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파편에 가려질 수 없는 유일한 별, 태양을 기준으로 삼았어요. 이 비행에서 승무원들은 지구에서 400,171km 떨어진 지점까지 갔고,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기록은 2026년 아르테미스 2호의 달 근접 비행 전까지 사람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간 기록이었어요.
비닐과 덕트테이프로 만든 '우편함'
착륙선에 산소는 넉넉했어요. 문제는 이산화탄소였어요. 숨 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수산화리튬 알갱이가 든 통이 빨아들이는데, 착륙선에 실린 통은 두 사람이 달에서 45시간 지낼 분량이었어요. 사령선에는 통이 충분했지만 모양과 크기가 달라 착륙선 장치에 끼울 수 없었어요. 둥근 구멍에 네모난 마개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었죠.
지상 기술자들은 우주선에 있는 물건만으로 둘을 잇는 방법을 고안했어요. 절차서에서 뜯어낸 비닐 표지, 덕트테이프 같은 것들이었죠. NASA 기술자들은 이 장치를 '우편함(mailbox)'이라고 불렀어요. 캡컴 조지프 커윈이 한 시간에 걸쳐 만드는 법을 불러 줬고, 스와이거트와 헤이즈가 조립했어요. 연결하자마자 이산화탄소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러벌은 나중에 이 즉석 장치를 지상과 우주가 협력한 훌륭한 사례라고 말했어요.



3도의 선실, 하루 200mL의 물
착륙선은 은-아연 배터리로 움직였어요. 연료전지와 달리 물이 부산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전기와 물이 모두 귀해졌어요. 물은 마실 뿐 아니라 장비를 식히는 데에도 필요했어요. 전력 소모를 최대한 줄였고, 승무원 한 사람에게 돌아간 물은 하루 200mL였어요. 헤이즈는 처음에 재진입 다섯 시간쯤 전에 냉각수가 떨어질 거라고 계산했지만, 결국 아폴로 13호는 물 12.8kg을 남기고 돌아왔어요. 세 사람의 몸무게는 합쳐서 14kg 줄었고, 헤이즈는 요로 감염에 걸렸어요.
불을 끈 우주선 안은 섭씨 3도(화씨 38도)까지 내려갔어요. 우주복을 입기엔 너무 더울 거라 러벌과 헤이즈는 달 표면용 부츠를 신었고, 스와이거트는 작업복을 한 벌 더 입었어요. 특히 스와이거트가 추위에 시달렸어요. 물주머니를 채우다 발이 젖었는데, 달에 내릴 예정이 아니어서 달 부츠가 없었거든요. 궤도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소변도 밖으로 버리지 말고 봉투에 모으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벽에는 물방울이 맺혔지만, 아폴로 1호 화재 뒤 강화한 전기 절연 덕분에 문제는 생기지 않았어요.
기록에 나온 하루 200mL는 비상 상황에서 쓴 제한량이에요. 사람이 실제로 마셔야 하는 물의 양을 뜻하지 않고, 헤이즈의 요로 감염도 적은 수분 섭취가 원인으로 추정돼요. 탈수 증상이 있으면 의료진의 안내를 따르세요.
가장 어려운 숙제 하나는 완전히 꺼진 사령선을 우주에서 다시 켜는 일이었어요. 원래 비행 중에 할 일로 설계되지 않은 작업이었죠. 관제사 존 에런이 매팅리와 여러 기술자와 함께 전력과 시간이 빠듯한 조건에서 재가동 절차를 만들었고, 승무원들은 큰 어려움 없이 따라 했어요. 마지막 문제는 재진입 직전 착륙선을 사령선에서 안전하게 떼어 내는 방법이었어요. 착륙선 제작사 그러먼은 토론토대학교의 버나드 에트킨 팀에게 연결 터널에 공기 압력을 얼마나 남겨 두면 두 모듈을 밀어낼 수 있는지 계산을 맡겼고, 이 방법이 통했어요.

6분의 통신 두절과 남태평양 착수
기계선을 떼어 냈을 때 승무원들은 처음으로 손상된 모습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었어요. 바깥 패널 한 면이 통째로 없어졌고, 산소 탱크 선반 위 연료전지가 기울어 있었으며, 고이득 안테나도 망가져 있었어요. 헤이즈는 주 엔진 노즐도 손상됐을 수 있다고 봤어요. 그 엔진을 쓰지 않기로 한 크랜츠의 판단이 옳았던 셈이에요.
재진입 때는 보통 공기가 이온화되면서 4분쯤 통신이 끊겨요. 아폴로 13호는 진입 각도가 얕아서 이 시간이 6분으로 길어졌고, 관제사들은 열 차폐막이 망가진 건 아닌지 마음을 졸였어요. 마침내 교신이 돌아왔고, 오디세이는 아메리칸사모아 남동쪽 남태평양, 회수선 USS 이오지마에서 6.5km 떨어진 곳에 내려앉았어요. 미국에서만 약 4,000만 명이 착수 생중계를 봤고, 3,000만 명이 6시간 30분짜리 중계 일부를 봤다고 해요. 소련 배 네 척이 혹시 도울 일이 있을까 착수 해역으로 향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28볼트 스위치에 걸린 65볼트, 사고 원인
NASA 랭글리 연구센터장 에드거 코트라이트가 이끌고 닐 암스트롱도 참여한 조사위원회는 6월 15일 최종 보고서를 냈어요. 2번 산소 탱크 안 교반 팬으로 가는 전선의 테플론 피복이 손상돼 있었고, 팬을 켜는 순간 전선이 합선되며 피복에 불이 붙었어요. 불로 탱크 안 압력이 치솟아 탱크 윗부분이 터졌고, 연료전지 칸에 퍼진 가스가 바깥 알루미늄 패널의 리벳을 뜯어내 날려 보냈어요. 날아간 패널이 근처 고이득 안테나를 때려 1.8초 동안 통신이 끊겼던 거예요. 충격으로 1·3번 연료전지의 산소 밸브가 닫혔고, 1번 탱크도 손상돼 이후 130분에 걸쳐 산소가 모두 새 나갔어요.
피복이 왜 상했는지가 진짜 이야기예요. 탱크 안 온도 조절 스위치 두 개는 원래 사령선 전원인 28볼트 직류에 맞춰 설계됐어요. 그런데 1965년 바뀐 규격은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탱크를 더 빨리 가압하려고 65볼트를 쓰도록 했고, 제작사 비치 항공은 65볼트용이 아닌 스위치를 그대로 썼어요. 게다가 이 탱크는 원래 아폴로 10호 기계선에 들어갈 선반에 달려 있었는데, 떼어 내는 과정에서 고정 볼트 하나를 빼지 않아 선반이 최소 5cm 떨어졌어요. 손상 가능성은 낮았지만 이때 주입관이 헐거워졌을 수 있어요.
1970년 3월 발사 리허설 때 2번 탱크는 정상 배출관으로 비워지지 않았어요. 기술자들은 탱크 안 히터를 켜서 산소를 끓여 날려 보내기로 했어요. 온도 조절 스위치는 히터가 섭씨 27도(화씨 80도)를 넘지 않게 막아야 했지만 65볼트에서 망가졌고, 히터관 온도는 섭씨 540도(화씨 1,000도)까지 올랐을 수 있어요. 온도계는 섭씨 29도(화씨 85도)까지만 읽게 돼 있어서 지켜보던 기술자는 이상을 알아챌 수 없었어요. 이 가열 방법은 러벌과 매팅리를 포함해 NASA 관리자와 기술자들이 승인한 것이었고, 탱크를 바꾸면 발사가 최소 한 달 늦어질 상황이었어요.
이후 아폴로 14호부터 산소 탱크는 다시 설계됐어요. 온도 조절 스위치는 제 전압을 견디는 것으로 바꿨고, 밀봉되지 않은 모터를 쓰던 교반 팬은 없앴어요. 팬이 없으니 산소량 계기가 부정확해져 어느 탱크도 절반 아래로 내려가지 않도록 세 번째 탱크를 기계선 반대편에 달았어요. 연료전지 칸 전선은 스테인리스강으로 감쌌고, 사령선에는 비상용 물 19L, 기계선에는 비상 배터리를 실었어요.
숫자로 다시 보는 아폴로 13호
| 항목 | 기록 | 계산·환산 |
|---|---|---|
| 사고 지점 | 지구에서 18만 해리 | 약 33만 km |
| 팬 스위치 ~ 폭발음 | 95초 | 통신 두절 1.8초 |
| 착륙선 설계 ~ 실제 사용 | 2명×2일 → 3명×4일 | 사람·일 기준 4 → 12, 3배 |
| 수산화리튬 통 | 2명이 45시간 쓸 분량 | 3명이면 약 30시간 분량 |
| 물 배급 | 1인 하루 200mL | 약 6.8액량온스 |
| 선실 최저 온도 | 섭씨 3도 | 화씨 약 38도 |
| 스위치 정격 ~ 실제 전압 | 28V → 65V | 약 2.3배 |
| 히터관 추정 온도 | 섭씨 540도 | 계기 상한(29도)의 약 19배 |
| 재진입 통신 두절 | 보통 4분 → 6분 | 2분(50%) 길어짐 |
| 최대 거리 | 지구에서 400,171km | 지구 둘레(약 4만 km)의 약 10배 |
표의 계산은 기록 숫자로 직접 했어요. 1해리는 1.852km라서 18만 해리는 333,360km, 기록의 약 33만 km와 맞아요. 착륙선은 두 사람이 이틀 쓰도록 만들었으니 '사람·일'로 4인데, 세 사람이 나흘 썼으니 12로 세 배를 버틴 셈이에요. 수산화리튬 통도 같은 방식으로 보면, 두 사람이 45시간 쓸 양을 세 사람이 쓰면 45 × 2 ÷ 3 = 30시간이에요. 나흘(96시간)을 버티기에 턱없이 모자랐으니 '우편함'이 없었다면 이산화탄소가 먼저 위험해졌을 거예요. 선실 온도는 기록에 화씨 38도로 나오는데, 섭씨로 바꾸면 (38 − 32) ÷ 1.8 ≈ 3.3도라서 섭씨 3도와 맞아요. 65를 28로 나누면 2.32로, 스위치가 견디도록 만든 전압의 두 배가 넘게 걸렸어요.
그러먼이 낸 농담 청구서도 숫자로 남았어요. 착륙선이 사령선을 달까지 '견인'해 줬다며 노스아메리칸 록웰에 청구한 내역에는 40만 1마일을 1마일에 1달러(첫 1마일은 4달러 추가), 배터리 충전 536.05달러, 산소값, 그리고 '추가 투숙객'(스와이거트) 4박에 하룻밤 8달러가 들어 있었어요. 20% 상업 할인과 2% 조기 지급 할인을 빼고 최종 금액은 312,421.24달러였어요. 노스아메리칸은 그동안 그러먼 착륙선 세 대를 공짜로 달까지 태워다 줬다며 지급을 거절했어요.
'성공적인 실패'가 남긴 것
사고는 잠시 식어 가던 아폴로 계획에 대한 관심을 되살렸어요. 교황 바오로 6세는 1만 명과 함께 승무원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했고, 미국 상원은 4월 14일 그날 밤 9시에 기업들이 잠시 일을 멈추고 기도 시간을 갖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어요. 『뉴욕 타임스』의 잭 굴드는 아폴로 13호가 또 한 번의 달 착륙 성공보다 세계를 더 하나로 묶었을 것이라고 썼어요. 닉슨 대통령은 승무원에게, 그리고 NASA 행정관 토머스 페인의 추천에 따라 비행 운영팀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줬어요.
반대로 이 사고는 계속 사람을 달에 보내면 언젠가 누군가는 죽을 거라는 걱정도 키웠어요. 유인우주선센터장 로버트 길루스 같은 관리들은 계획을 빨리 끝내자고 했고, 예산 삭감과 맞물려 아폴로 13호 뒤 두 임무가 취소됐어요. 아폴로 계획은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로 끝났어요. 세 승무원은 누구도 다시 우주에 가지 못했어요. 1971년 2월 아폴로 14호가 아폴로 13호의 목적지였던 프라 마우로에 내렸고, 그때 착륙선과 교신한 캡컴이 헤이즈였어요.
영화에 나온 몇몇 장면은 기록과 달라요. 영화 속 대사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we have a problem)"는 실제로 과거형 "문제가 생겼었다(we've had a problem)"였고, 크랜츠의 상징처럼 된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는 1995년 영화가 만든 대사예요. 이 말이 크랜츠와 워낙 깊이 연결되자 그는 2000년 자서전 제목으로 이 문장을 썼어요.
아폴로 13호 자주 묻는 질문
- 아폴로 13호 사고 원인은 무엇인가요?
- 2번 산소 탱크 안 팬 전선의 테플론 피복이 발사 전 시험에서 손상돼 있었고, 비행 중 팬을 켜자 합선으로 불이 붙어 탱크가 터졌어요. 28볼트용 온도 조절 스위치에 65볼트가 걸려 히터가 과열된 것이 피복 손상의 원인이었어요.
- "휴스턴, 문제가 생겼다"는 실제로 누가 한 말인가요?
- 스와이거트가 먼저 "여기 문제가 생겼었어요"라고 알렸고, 러벌이 "휴스턴, 문제가 생겼었어요"라고 되풀이했어요. 영화는 이 말을 현재형으로 바꿨어요.
- 아폴로 13호 승무원은 모두 살아 돌아왔나요?
- 세 사람 모두 1970년 4월 17일 남태평양에 무사히 착수했어요. 헤이즈는 물 섭취가 부족해 요로 감염에 걸렸지만 나머지는 지쳤을 뿐 건강했어요.
- 아폴로 13호 이산화탄소 필터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 지상 기술자들이 절차서의 비닐 표지와 덕트테이프 같은 기내 물건으로 사령선의 네모난 통을 착륙선 장치에 연결하는 '우편함'을 고안했고, 스와이거트와 헤이즈가 한 시간 동안 설명을 들으며 조립했어요.
참고 자료
- Wikipedia, Apollo 13
- 사진: Apollo 13 Service Module (lossless crop)
- 사진: Apollo 13 launch (S70-34852)
- 사진: 1970 Mission Control Apollo 13
- 사진: Apollo13 tank2
- 사진: Apollo13 apparatus
- 사진: Apollo 13 Mailbox at Mission Control
- 사진: Apollo 13 LM undocking (AS13-59-8566) (cropped)
- 사진: Apollo13 splashdown
- 사진: Mission Control Celebrates - GPN-2000-001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