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 카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어요. 벼랑 끝에서 하늘을 보는 바보, 심장에 꽂힌 칼 세 자루, 무지개 아래에서 춤추는 가족. 이 그림들은 모두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어요. 그런데 이 덱의 이름은 오랫동안 '라이더 웨이트'였어요. 라이더는 출판사이고 웨이트는 기획자예요. 그림을 그린 사람의 이름은 빠져 있어요. 78장을 그린 화가 파멜라 콜먼 스미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 그림이 왜 타로의 표준이 됐는지 따라가 볼게요.
런던에서 태어나 자메이카와 뉴욕에서 자란 화가
파멜라 콜먼 스미스는 1878년 2월 16일 런던 핌리코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는 미국인이었어요. 아버지 찰스 에드워드 스미스는 브루클린 출신의 상인이었고, 어머니 코린 콜먼은 화가 새뮤얼 콜먼의 누이였어요. 가족은 스미스가 열 살 무렵까지 영국 맨체스터에 살았고, 1889년에 아버지의 일 때문에 자메이카로 옮겨 킹스턴에서 몇 해를 보냈어요.
1893년 무렵 스미스는 뉴욕 브루클린으로 가서 열다섯 살에 프랫 인스티튜트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화가 아서 웨슬리 다우에게 배웠어요. 1897년에 학위 없이 학교를 떠났지만 이미 삽화가로 일을 시작한 뒤였어요. 자메이카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작품에 남았어요. 1899년에 낸 『아난시 이야기』는 자메이카 민담을 직접 쓰고 그린 책이에요.
스미스의 집안에는 예술과 공직에 몸담은 사람이 여럿 있었어요. 아버지 쪽 할아버지 사이러스 포터 스미스는 브루클린 시장을 지냈고, 외삼촌 새뮤얼 콜먼은 풍경화가였어요. 스미스는 글도 직접 썼어요. 『아난시 이야기』에 이어 1905년에는 『침침』이라는 책을 쓰고 그렸고, 『위디콤 페어』와 『페어 배니티』 같은 그림책도 냈어요. 타로 덱은 그가 남긴 많은 작업 가운데 하나였어요.
극장과 화랑을 오가던 시절
영국으로 돌아온 스미스는 런던 라이시엄 극장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어요. 배우 엘런 테리와 헨리 어빙, 그리고 극장의 사무를 맡고 있던 『드라큘라』의 작가 브램 스토커가 그 무리에 있었어요. 스미스는 이들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니며 의상과 무대 디자인 일을 했어요. '픽시'라는 별명은 엘런 테리가 붙여 준 것으로 전해져요.
삽화 일도 꾸준히 했어요.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집에 그림을 그렸고, 스토커가 쓴 엘런 테리에 관한 책에도 참여했어요. 훗날 스토커의 소설 『흰 벌레의 소굴』(1911)과 테리의 『러시아 발레』(1913)에도 삽화를 그렸어요. 1903년에는 『그린 시프』라는 잡지를 직접 창간했어요. 1년 남짓 동안 13호를 내고 끝났지만, 이듬해에는 그린 시프 프레스라는 출판사를 세워 여성 작가의 책을 주로 펴냈어요.
스미스에게는 독특한 작업 방식이 있었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떠오르는 장면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겼어요. 사진가 앨프리드 스티글리츠가 이 그림들에 관심을 보였고, 1907년 뉴욕에 있던 자신의 화랑에서 스미스의 전시를 열었어요. 사진 전문 화랑이던 그곳에서 전시한 첫 번째 화가가 스미스였어요. 스티글리츠는 1908년과 1909년에도 스미스의 작품을 걸었어요.
1909년, 여섯 달 동안 그린 78장
스미스는 1901년에 황금새벽회라는 신비주의 단체에 들어갔고, 거기서 아서 에드워드 웨이트를 만났어요. 웨이트는 1909년에 스미스에게 타로 덱의 그림을 맡겼어요. 스미스는 그해 4월부터 10월까지 약 여섯 달 동안 그림을 완성했어요.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1909년 편지에서 그는 그림이 80장쯤 된다고 적었어요. 78장짜리 덱과 거의 맞아떨어지는 숫자예요. 덱은 그해 12월 런던의 윌리엄 라이더 앤드 선에서 나왔어요.
카드를 자세히 보면 그림 아래쪽 구석에 작은 문양이 있어요. 스미스가 그림마다 남긴 서명이에요. 이 사이트의 타로 카드에서도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컵 2는 오른쪽 아래 땅 위에 그 문양이 그려져 있어요. 덱의 이름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카드 한 장 한 장에는 화가의 표시가 남아 있었던 셈이에요.
덱이 나오는 과정도 단번에 끝나지 않았어요. 1909년 12월의 첫 인쇄는 수량이 아주 적었고, 이듬해 3월에 뒷면 무늬를 바꿔 더 많이 찍었어요. 웨이트는 덱과 함께 『타로의 열쇠』라는 해설서를 냈고, 1911년에는 스미스의 그림 78장을 흑백 도판으로 모두 실은 개정판 『타로의 그림 열쇠』를 냈어요. 라이더 출판사는 이 덱을 1939년까지 펴냈어요.
숫자 카드에 장면을 그려 넣다
스미스의 덱이 이전의 타로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숫자 카드예요. 그때까지 널리 쓰이던 마르세유 계통의 타로는 숫자 카드에 수트 무늬를 개수만큼 그려 넣는 것이 보통이었어요. 컵 5는 잔 다섯 개였어요. 스미스는 숫자 카드 40장에 모두 사람과 장면을 그렸어요. 컵 5는 쓰러진 잔 앞에 고개를 숙인 사람이 됐고, 완드 10은 막대 열 개를 끌어안고 걷는 사람이 됐어요.
이 발상에는 본보기가 있었어요.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솔라 부스카 타로예요. 78장이 온전히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타로이고, 숫자 카드 전부에 그림을 넣은 가장 이른 덱이기도 해요. 이 덱을 가지고 있던 부스카 세르벨로니 집안은 1907년에 78장 전부를 찍은 흑백 사진을 영국박물관에 기증했어요. 웨이트와 스미스가 그곳에서 사진을 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져요. 실제로 라이더 웨이트의 소드 3은 솔라 부스카의 소드 3과 닮았고, 완드 10은 솔라 부스카의 소드 10과 구도가 매우 비슷해요.
숫자 카드에 그림이 들어가자 타로를 읽는 방법이 달라졌어요. 뜻을 외우지 않아도 그림 속 인물의 자세와 표정, 배경에서 이야기를 읽어 낼 수 있게 됐어요. 오늘날 타로를 배우는 사람 대부분이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떠올리는 방식으로 시작하는데, 그 방식이 이 덱에서 비롯됐어요.
덱은 유명해졌지만 화가는 잊혔어요
타로 덱을 마친 뒤에도 스미스는 활동을 이어 갔어요. 여성 참정권 운동을 지지해서 서프러지 아틀리에라는 삽화가 모임을 통해 운동을 돕는 그림을 그렸어요. 1911년에는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어요. 제1차 세계대전 뒤에는 콘월의 리저드 반도에 집을 빌려 친구 노라 레이크와 함께 가톨릭 사제들을 위한 휴양소를 운영했어요.
말년은 넉넉하지 않았어요. 책을 내 줄 출판사를 찾기 어려웠고 형편도 어려웠어요. 1939년에 엑서터로, 1940년대 초에 콘월의 뷰드로 옮겼고, 1951년 9월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남은 물건은 빚을 갚기 위해 경매에 부쳐졌어요. 무덤에는 표지가 없어서 지금은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어요.
| 연도 | 일 |
|---|---|
| 1878 | 런던 핌리코에서 출생 |
| 1889 | 가족과 자메이카 킹스턴으로 이주 |
| 1893 | 브루클린 프랫 인스티튜트 입학 |
| 1901 | 황금새벽회 가입, 웨이트를 만남 |
| 1903 | 잡지 『그린 시프』 창간 |
| 1907 | 스티글리츠의 뉴욕 화랑에서 전시 |
| 1909 | 4~10월 타로 그림 제작, 12월 덱 발행 |
| 1911 |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 |
| 1951 | 콘월 뷰드에서 사망 |
100년 뒤에 돌아온 이름
스미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덱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어요. 위키백과에 실린 추정으로는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1억 벌 이상이 유통됐어요. 원본 그림은 미국에서 1966년에 퍼블릭 도메인이 됐고, 그 구도를 따라 그린 덱이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어요. 위키백과는 이 덱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78장 타로 덱이라고 적고 있어요.
이름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어요. 요즘 연구자들은 이 덱을 '웨이트 스미스 타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고, '라이더 웨이트 스미스'를 줄인 RWS라는 약칭도 널리 쓰여요. 발행 100년이 되던 2009년에는 화가의 이름을 앞에 놓은 '스미스 웨이트 센테니얼 덱'이 나왔어요. 1975년에는 델라웨어 미술관과 프린스턴 대학교 미술관에서, 2019년에는 모교인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그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전시가 열렸어요.
타로 카드를 뽑을 때 우리가 읽는 것은 사실 스미스의 그림이에요. 소드 9의 잠 못 드는 밤도, 컵 10의 무지개도 그가 1909년 여름에 떠올린 장면이에요. 다음에 카드를 한 장 뽑으면 뜻을 찾아보기 전에 그림 구석의 작은 서명부터 찾아보세요. 110년도 더 전에 그 장면을 처음 그린 사람이 거기 있어요.
타로는 재미와 자기 성찰을 위한 놀이예요. 카드의 그림과 역사를 아는 것과 별개로, 카드가 미래를 알려 준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어요.
